와이파이가 먹통인 ‘최후의 날’, 음악에 감싸일 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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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코난의 맛있는 오디오

넷플릭스를 통해 <미드나잇 스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영화배우라고 하는 조지 클루니. 하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는 단지 섹시함을 넘어선 여러 진솔한 가치를 담아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릴리 브룩스돌턴의 소설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원작으로 각색한 <미드나잇 스카이>는 인류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이상한 일들은 아들, 딸 둘과 여행 온 아만다의 가족이 빌린 숙소에 이방인들이 찾아오면서부터 더 심해진다. 아빠와 딸 둘은 갑자기 정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원래 집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어쩔 수 없는 아슬아슬한 동거 중 기이한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인터넷, 와이파이가 끊기는 마당에 막내 딸은 드라마를 못봐 발을 동동 구르고 TV에선 경계 경보 방송이 흘러나온다. 참다 못해 클레이는 밖으로 나가 정황을 살피는데 도시로 가는 길은 온갖 믿지 못할 일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완전 자율 주행으로 주행하는 자동차가 길을 잃고 계속해서 돌진하다가 서로 부딪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클레이는 바깥세상, 도시의 정황을 살피러 홀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잃을 뻔했다. 하늘에선 웬 비행기가 아랍어로 작성된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고 거기엔 미국에 대한 타도 메시지가 쓰여 있다.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울며불며 호소하던 한 아주머니. GPS가 잡히지 않는 상황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좌표마저 헷갈리게 만든다. 문명의 파괴를 복선하는 요소는 기계, 전자 장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슴이 떼로 몰려와 집 앞에 모여 인간을 응시하고 엄청난 굉음이 몰아치기도 하며 창문이 깨질 듯한 소음이 소스라칠 듯 강력한 신호를 내뿜는다.
그러던 와중에 아만다가 집 주인 조지 스캇과 한 밤에 누리는 여유는 인상적이다. 외부의 해커 짓인지 혹은 외계인의 침공인지 모를 긴박한 순간이지만 그들은 음악을 듣는다. 엘피 수집이 취미인 조지 스캇은 그의 레코드를 구경시켜주고 아만다는 자신이 한 때 좋아했던 음반을 꺼내들어 턴테이블 위에 올린다. 통신이 두절되어 인터넷도 TV조차도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음반 한 장 정도는 이 세상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이전의 평범한 일상을 잠시나마 소환시킨다. 매킨토시 MC275 마크가 선명한 진공관 파워앰프에 역시 매킨토시의 최신 턴테이블이 보인다. 아만다는 조심스레 카트리지를 올린다. 오토폰 2M 블루 MM 카트리지다.


우리는 인터넷, 전화 등 통신 위에서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편의가 만들어놓은 것은 단순한 일상의 편리 이상이다. 전쟁의 실상을 TV로 아무렇지 않게 구경한다. 어떤 위험도 감지하지 못한 채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게임을 보는 것처럼 우리 의식을 마비시켰다. 편리의 강도만큼 공감은 되레 약해졌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배우들의 화려한 겉모습을 즐기고 때론 감정 이입하며 행복하지만 반대로 그 뒤에 숨은 땀과 어둠은 알 길이 없다. 단순히 보도의 기능을 넘어 현실은 통신이라는 기반 위에서 왜곡되기도 한다. 그 허상이 깨질 때 우린 현실 앞에 기겁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무분별하게 온라인과 통신, 하이테크를 맹신하다간 언젠가 ‘미드나잇 스카이’에서마냥 우주 어딘가를 추위에 떨며 낭인처럼 헤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처럼 TV나 스마트폰, 컴퓨터가 아닌 나의 눈으로 여과 없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음악도 온라인 스트리밍이 아닌 LP로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간만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듣고 싶어졌다. ‘인간은 극복되어야할 그 무엇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