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왼쪽)과 18·19대 의원을 역임한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임대철 기자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왼쪽)과 18·19대 의원을 역임한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임대철 기자
국회에서 활동했던 경제 전문가들은 22대 국회에 보다 많은 ‘경제통’이 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퍼주기’와 ‘선심성’으로 점철된 잘못된 입법 관행을 경제학자와 경제 관료, 기업인 출신의 경제통들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안 평택대 이사장은 “국회의원 4명 중 적어도 1명 정도는 경제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8·19대 의원을 지낸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통 의원들이 활발히 활동하기 위해 의원들의 정책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할 운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내 경제통, 75명은 돼야

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난 이 이사장은 “국회의 기능 중 절반은 경제”라며 “경제와 기업 관련 경험 및 지식이 어우러진 지혜를 갖춘 경제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의원 300명 중 25%인 75명 이상은 경제통이 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래야 날로 치열해지는 경제 전쟁에서 국회가 민간 경제 부문과 힘을 합쳐 살아남을 전략을 수립하고, 행정부와 견제 및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제외한 17개 국회 상임위원회 중 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 정도를 뺀 모든 상임위가 민간의 경제 활동과 관련된 법안을 다룬다. 최근에는 외교 활동도 경제안보 측면에서 이뤄진다. 법 체계·자구를 심사하는 법제사법위는 ‘경제 활동의 헌법’인 상법의 소관 상임위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김광림 전 의원은 “여야 모두 경제통이 너무 적다 보니 당내에서 정책 얘기가 나오기 어렵다”며 “경제통이 다수 진입해야 의원총회 때도 정책 입법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20대 국회 비례대표를 지낸 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은 “경제는 과학과 증거, 데이터로 돌아가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경제통이 국회에 많이 진입하는 것이 국가의 구조적 성장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당 시스템 개혁도 필요

아무리 많은 경제통이 국회에 진입해도 지속적인 활동을 못 하면 성과를 낼 수 없다. 이 때문에 유 전 부총리는 “경제통이 원내에 많이 진입하는 것 이상으로 전문가의 목소리가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도부가 경제통의 합리적인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당내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17대 의원을 지낸 채수찬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도 “현재 국회는 정책이 정치에 완전히 종속됐다”며 “양당 정책위원회 의장부터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경제통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논리에 경제 논리가 종속되는 정당 의사결정 방식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질의 정책 생산 능력을 갖춘 의원이 공천에서 우대받을 수 있는 정당의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최운열 전 의원은 “경제학자의 정치 입문 경로가 비례대표로 제한적이다 보니 재선이 쉽지 않다”며 “경제 전문가가 국회에 남아 꾸준히 정책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도 “경제 전문가가 지역구 정치인이 되면 지역의 정치와 논리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며 “유능한 경제 전문가가 비례대표직을 계속 유지하며 원내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공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제통, 상대 설득할 줄 알아야”

정치권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경제통 스스로 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유 전 부총리는 “경제 전문가 스스로도 자신의 전문성만 내세울 게 아니라 상대방의 논리를 꺾고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정치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경제인’과 ‘정치인’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를 풀려는 경제인은 문제 자체를 바꾸려는 정치인의 생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경제인들은 목적 지향적으로 사고하고, 능률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도 언제나 설득과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정치와 결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재영/평택=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