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 동행 취재해보니…칼바람에 빙판길 아슬아슬
"35명 중 5명이 병원신세…엔데믹에 수입도 반토막"
옷 껴입어도 속수무책…한파에 더 움츠러드는 배달노동자
"제가 속한 배달업체 지역 지부에 근무하는 35명 중에서 5명이 병원에 입원했어요.

전치 5주 부상이 나오신 분도 계시죠."
9년째 전업으로 배달일을 해왔다는 김성진(46)씨는 최근 업무 중에 사고가 나신 분이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씁쓸히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역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만난 배달플랫폼 노동자들은 한파에 불경기까지 겹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전국 최저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고 서울에 눈까지 내렸던 이날 배달 노동자들은 벌써 다음날 쌓여있을 눈 걱정에 착잡한 표정이었다.

안전사고 우려에 더해 아예 운행을 나가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4년째 배달일을 했다는 김승우(33)씨는 "이런 날은 지상으로 주행을 못 해 지하 주차장을 통해 배달해야 할 때가 가장 두렵다"며 "주차장 바닥이 얼어있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넘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빙판처럼 얼어있는 도로에 더해 고층 건물 사이를 헤집다 강해지는 이른바 '빌딩풍'도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씨는 "지난 토요일에는 강풍이 불어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가 저절로 옆 차로로 밀리는 일도 있었다.

주변에 차가 없어서 간신히 사고를 피했다"고 말했다.

기자도 이날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김성진 씨의 배달에 동행했다.

뒷좌석에 탑승해 대로로 나오자마자 불어닥친 맞바람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안전모를 썼지만,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바람에 아래턱이 시렸다.

얼굴 안면부를 보호하는 안전모의 얼굴 가림막에는 입김이 묻어 전방 시야를 가리기도 했으며 오토바이의 사이드미러에도 계속 눈이 묻어 시야를 방해했다.

김씨는 좁은 길에 갑작스레 앞차가 멈추어 설 때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골목길 사거리에서 앞차가 좌회전하기 위해 멈춰서자 일찌감치 브레이크를 잡았음에도 기자와 김씨가 탄 오토바이는 앞으로 위험천만하게 들썩였다.

고객에게 음식을 전달하고 온 김씨는 "실내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안경에 습기가 한동안 가시지 않는다"며 "안경 쓴 사람은 이런 날이 쥐약이다"라고 말했다.

석촌역 쉼터에서 배달 주문을 접수하고 음식점에 들렀다가 송파구 방이동의 고객에게 배달하고 다시 쉼터로 돌아오기까지 약 3.6㎞를 동행했다.

20분 남짓한 주행에 최고 속도도 40㎞/h를 넘지 않았지만, 찬바람에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 오토바이에서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옷 껴입어도 속수무책…한파에 더 움츠러드는 배달노동자
6년 차 배달 노동자 이병호(56)씨는 "추울 때는 화장실을 가기도 불편하다.

가게 10곳을 들리면 그중 2∼3곳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며 "어떤 곳은 기사님들이 화장실을 더럽게 쓴다며 폐쇄한다는 곳도 있었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이씨는 11월 초에 배달을 나갔다가 젖은 낙엽을 밟고 미끄러져 오른쪽 발가락의 전치 6주의 복합골절상을 입어 잠시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배달 노동자들은 추위와 싸우며 일하고 있지만 수입은 코로나19로 배달업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보다 반토막으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배달플랫폼노동조합과 국민입법센터가 올해 7월 24일부터 한 달간 음식 배달 노동자 1천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2.3%가 엔데믹이 이후 소득 감소를 겪었다고 답했다.

김승우 씨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주 6일을 일해도 한 주에 100만원 조금 더 버는 수준이다"며 "기름값과 보험료, 식대를 빼면 7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날이 춥고 눈이 내리면 배달 1건당 수당이 더 올라간다.

그러면 추위에 어쨌든 '콜'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