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거느린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가 일본 대표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2대 주주로 영입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대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보유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CJ ENM은 이번 투자유치로 미국 자회사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츠)의 재무 건전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전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J(일본) 콘텐츠'도 손에 넣게 됐다.

◆CJ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日 콘텐츠

CJ ENM은 피프스시즌이 도호 인터내셔널을 대상으로 2억2500만 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도호 인터내셔널은 도호의 미국 법인이다. 이번 투자가 마무리되면 도호 인터내셔널은 CJ ENM에 이어 피프스시즌의 2대 주주(25%)로 올라선다.

도호는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일본의 거대 엔터테인먼트사다. '고질라', '라돈' 등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연극 지적재산권(IP)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배급도 맡고 있다.

CJ ENM은 이번 투자 유치로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었던 피프스시즌이 다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초 CJ ENM은 피프스시즌의 지분 80%를 약 9200억원에 사들였다. '라라랜드', '콜미바이유어네임' 등 글로벌 히트작의 IP를 확보하는 동시에, 피프스시즌이 갖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K콘텐츠를 할리우드에 본격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콘텐츠 제작 일정이 줄줄이 밀리면서 피프스시즌은 매해 수백억원대 적자를 냈다. 여기에 할리우드 작가 파업까지 겹치면서 피프스시즌은 올 상반기까지 '개점휴업' 상태였다.

CJ ENM 입장에서 이번 투자 유치는 피프스시즌의 자금난을 해결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일본 콘텐츠란 새로운 먹거리까지 안겨줬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란 평가를 받고 있다. CJ ENM과 피프스시즌은 도호의 콘텐츠를 전세계에 판매할 수 있도록 리메이크하는 작업에 함께 참여한다. 초기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에 걸쳐 세 회사가 긴밀하게 협력할 예정이다. 제작이 완료되면 피프스시즌이 갖고 있는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콘텐츠를 공급한다.

◆"토호, K콘텐츠 노하우 보고 투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돈줄이 말라있는 이 시기에 도호가 대규모 투자를 결심한 배경엔 'K콘텐츠의 성공'이 있다. CJ ENM 관계자는 "일본은 '글로벌 콘텐츠 강국'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등 특정 부문에 치우쳐져 있는 약점이 있다"며 "반면 한국은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실사 콘텐츠로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도호가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데 CJ ENM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일본 콘텐츠를 베끼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 콘텐츠를 재가공해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마츠오카 히로 도호 대표는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CJ ENM 및 피프스시즌과의 협업은 도호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며 "일본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더 활발히 진출할 수 있는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창근 CJ ENM 대표는 "CJ ENM의 근간인 콘텐츠 제작 경쟁력에 집중해 '글로벌 IP 파워하우스'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안시욱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