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멕시코 교민 온정 나눔에 '트집 잡기'보다 응원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차로 4∼5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태평양 바닷가, 아카풀코는 당분간 '휴양지'라고 부르기 힘든 큰 상처를 입었다.

1개월여 전 덮친 허리케인 '오티스' 때문이다.

지난 10월 25일 새벽 최고 등급(5등급) 허리케인의 위력을 몸소 겪어낸 주민 파블로(45) 씨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비바람이 마치 사신 같았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최고풍속 시속 315㎞까지 기록했을 정도로 강력했던 역대급 허리케인 오티스는 51명 사망과 32명 실종이라는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재클린 오나시스의 신혼여행지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 '아카풀코의 추억'(Fun in Acapulco) 촬영지로 미국에서도 유명한 이 지역의 호텔은 80% 이상 손상되는 등 물적 피해 역시 막심했다.

멕시코 정부가 추산한 재해 복구 비용은 613억 페소(4조6천200억원 상당)에 달한다.

주택 벽체가 뜯겨 나가 한동안 이재민 생활을 했던 파블로 씨는 "멕시코시티에 사는 사촌의 도움 덕분에 나는 빨리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며 "이웃 중에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사실상 초토화된 아카풀코의 모습들이 한때 현지 통신 두절 영향으로 하루 이틀 뒤에야 보도되면서, 멕시코 한인들이 모인 소셜미디어 '단체 대화방'도 바빠졌다.

[특파원 시선] 멕시코 교민 온정 나눔에 '트집 잡기'보다 응원을…
멕시코 한인 단체인 '사랑의 손길'과 멕시코 한인회, 멕시코시티 시민경찰대 등이 10월 말부터 구호 물품을 모으기 시작했고, 5t급 화물차가 꽉 찰 만큼의 생필품이 며칠 새 답지했다.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은 구호품 접수는 사실상 11월 한 달 내내 진행됐다.

전달도 몇차례에 나눠 이뤄졌다.

장원 멕시코 한인회장은 "아카풀코 피해가 단시간에 복구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재민 지원을 위한 구호 모금 캠페인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 현지 팬클럽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원끼리 연락을 주고받으며 모은 구호품을 적십자사 등을 통해 전했다.

그러나 인지상정으로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이들에 대해 트집을 잡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관련 소식을 보도한 기사에 '비싸 보이는 물건을 전달했어야 한다'라거나 구호품을 주면서 손태극기를 함께 건넨 것을 두고 '유치한 생색내기'라는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마음이 상한 청소년 교민 가족도 더러 있다고 한다.

한 교민은 "각자 경제 활동을 하는 멕시코에서, 현지인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서 나섰던 한인이 대부분일 것"이라며 "고국의 일부 냉소적인 반응에 허탈했다"고 말했다.

[특파원 시선] 멕시코 교민 온정 나눔에 '트집 잡기'보다 응원을…
멕시코에는 '열매가 달렸을 때만 선인장에 다가간다'(Al nopal solo se le arriman cuando tiene tunas)라는 속담이 있다.

일종의 호혜적 관점에서 보답을 기대할 수 있을 때 다른 누군가에게 친밀감을 드러내거나 도움을 주는 상황을 묘사하는 문구로, 전략적 외교술을 한 마디로 요약한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이를 넘어서는 접근법이 결과적으론 상대의 마음을 얻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 상대방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면 더 그렇다.

각자의 사정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보여준 이번 온정 나눔은 그런 면에서 조롱과 비난보다는 충분히 응원받아야 할 '민간 외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