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를 지렛대로…군사작전 상징하는 'V'를 선거 로고로
출마 선언 앞두고 중동 순방 활발한 외교행보
푸틴, 참전 군인 앞에서 대선출마 선언…"연임 확실시"(종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무대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비로소 직접 공개했다.

푸틴 대통령의 내년 대선 출마는 사실상 기정사실이었던 터라 출마 선언의 시점과 형식이 남은 관심사였다.

크렘린궁과 타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군인들을 초대해 훈장을 수여한 뒤 비공식 대화 자리에서 내년 3월17일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출마 선언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스파르타 대대 지휘관인 아르툠 조가 중령이 선거에 나와달라고 요청하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연방 대통령직에 출마할 것"이라고 답하는 형식을 취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푸틴 대통령의 출마 선언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가 중령의 면면을 뜯어보면 즉흥적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지렛대 삼아 대선 출마의 정당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인상을 풍기는 장면이어서다.

DPR은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과 함께 우크라이나 정권에 맞서 싸워온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다.

러시아는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 통칭) 해방을 목표로 지난해 2월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부르는 공세에 나섰고 그해 가을 이들 두 지역과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헤르손을 자국의 '새 영토'로 편입했다.

조가 중령이 이끄는 스파르타 대대는 2014년 DPR에서 창설된 부대로,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에 참여해왔다.

그는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소속으로 DPR 인민위원회(의회) 의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조가 중령은 이날 "대통령의 행동과 결정 덕분에 돈바스는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얻었다"며 특별군사작전을 푸틴 대통령의 업적으로 치켜세웠다.

특별군사작전의 목표인 지역의 군부대 지휘관이 푸틴 대통령에게 대선 출마를 요청하고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구성해 이 작전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참전 군인 앞에서 대선출마 선언…"연임 확실시"(종합)
이날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선거를 상징하는 로고로 러시아 국기 색(하양·파랑·빨강) 리본으로 표현된 'V' 문자를 공개했다.

'진실의 힘'을 의미하는 V는 '승리를 위해'라는 뜻을 담은 'Z'와 함께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을 상징하는 문자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상징 사용을 금지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유례없는 제재를 받고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으며 고립 위기에 처했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길어질수록 푸틴 대통령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던 게 사실이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미국 CBS에 "푸틴 대통령은 국가에 봉사할 때 어려운 상황에서 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떠들썩한 TV 연설이 아니라 절제된 방식으로 출마를 선언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아마도 겸손함과 일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강조하려는 크렘린궁의 노력"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8년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도 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출마를 선언해달라는 직원들의 요청에 답하는 방식을 빌렸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군사작전을 이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푸틴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인 평론가 압바스 갈리아모프는 "우크라이나 분쟁이라는 접착제가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야 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마땅한 도전자가 없는 상태에서 8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고 있어 재선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기대와 달리 지지부진하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동력도 약화하고 있는 것도 푸틴 대통령에겐 호재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터지자 이스라엘, 이란과 동시에 우호적인 위치를 활용해 중재자로 나서며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높이기도 했다.

6일엔 미국의 전통 맹방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유가 통제를 위해 협력하기로 하는 공동성명을 내면서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는 이미지를 과시했다.

이같은 행보가 대선 출마 선언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