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 있는 이우환의 ‘관계항-만남의 탑’.  /이선아 기자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 있는 이우환의 ‘관계항-만남의 탑’. /이선아 기자
서울 도심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시청역 한국프레스센터. 이 건물 앞에는 거대한 철판과 돌이 놓여 있다. 높이가 4m에 달할 만큼 크지만 마치 원래 이곳에 있었던 듯 어색함 하나 없이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래서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조차 이곳에 이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렇게 말한다. “프레스센터 앞에 이우환의 조각이 있다고?”

맞다. 이 작품을 만든 건 세계적인 예술가 이우환이다. 그것도 그의 대표 연작인 ‘관계항’이다.

렘브란트와 어깨 나란히 한 ‘거장’

이우환 화백과 그의 대표작 ‘관계항’ 연작. /베를린 함부르크반호프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이우환 화백과 그의 대표작 ‘관계항’ 연작. /베를린 함부르크반호프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 이우환. 그는 명실상부한 한국 미술의 거목이다. 지금 독일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에서 이우환의 ‘관계항’과 렘브란트의 대표작 ‘벨벳 베레모를 쓴 자화상’이 나란히 놓인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프레스센터 앞 ‘관계항-만남의 탑’은 그런 그가 1985년 만든 작품이다. 당시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신사옥인 프레스센터를 준공할 때 그에게 의뢰했다. 40년 가까이 프레스센터 앞을 지키고 있는 철판과 돌, 그 앞에 서면 여러 궁금증이 떠오른다.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의 대표작이 된 걸까. ‘관계항’은 무슨 뜻일까.

3개월 만에 서울대 중퇴하고 일본으로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이우환이 어떻게 세계적인 예술가가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이야 ‘한국 대표 예술가’로 꼽히지만, 그의 무대는 오랫동안 일본이었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3개월 만에 중퇴했다. 그가 향한 곳은 일본이었다. 그는 니혼대 문학부 철학과 신입생으로 다시 입학했다.

당시 일본에선 ‘모노하’라는 미술운동이 유행했다. ‘모노(物)’는 ‘사물’이라는 뜻. 말 그대로 작가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나무 돌 철 등 사물의 본질적인 미(美)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탄탄한 철학 지식으로 무장한 이우환은 1969년 일본 미술계에 모노하에 대한 평론을 써냈다. 하이데거·메를로 퐁티 등 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모노하 운동을 해석한 참신한 비평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국에서 건너온 시골 청년이 ‘일본 모노하의 대부’가 된 것이다.

점 하나에 담은 무한함

점 하나에 무한함을 담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점 하나에 무한함을 담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우환은 직접 붓을 들었다. 그의 대표작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다. 언뜻 보면 너무 단순하고 쉽다. 그래서 그의 예술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는 2016년 위작 사건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만만찮다. 일단 물감부터 작가가 직접 들여온 돌을 일일이 갈아서 만든 것이다. 이후 특수 제작한 붓으로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는 ‘관계’. 흔히들 관계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 떠올리지만 이우환에게 관계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공간, 사물과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돌과 철은 아버지와 아들”

프레스센터 앞 ‘관계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의 관계일까. 힌트는 재료에 있다. 철판과 돌이다. 철판은 돌의 성분을 뽑아내 만든 것이다. 근원이 같다는 얘기다. 게다가 돌은 태곳적부터 존재한 ‘자연의 재료’이고, 철판은 ‘산업사회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우환은 “돌과 철판은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라고 말한다. “돌과 철판의 만남은 문명과 자연의 대화이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여주는 게 내 작품”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냥 와서 보고, 느껴보세요”

하지만 굳이 작품 앞에서 이렇게 깊은 메시지를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는 언제나 강조한다. 그저 작품 앞에 서서 보고,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느끼면 그게 예술작품 감상의 첫 단계라고. 최근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맞아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하는 예술은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무슨 정보입니까’가 아닙니다. 와서 보고 느끼고, 자기가 알지 못하더라도 떨림이 일어나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 게 제일 첫 단계예요. 저는 ‘이것입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하는 것 이전에 느끼는 차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선아 기자
꼭 미술관에 가야만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출근길에 만나는 조형물, 업무차 들른 호텔에 걸린 그림, 아이 손을 잡고 찾은 백화점에 놓인 조각 중에는 유명 미술관의 한자리를 차지할 만큼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걷다가 예술’은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