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이름 불리고파"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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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병원 씨 차남 최금수 씨 "이제라도 다행, 정부에 감사"
"아버지에게 이름 석 자 불려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동원됐다가 숨진 고(故) 최병연 씨의 유해가 봉환된 4일 오후 전남 영광군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차남 최금수(82)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속내를 풀어냈다.
자그마한 사진 속 군복을 입고 있던 아버지 모습이 유일한 기억이라고 말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아버지 유해를 80년 만에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듯했다.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짓거나 이내 숙이며 눈시울을 붉힌 최씨는 "이제라도 유해가 봉환돼 다행이다"며 입을 뗐다.
최씨가 태어난 지 49일이 되던 1942년 11월 25일 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태평양전쟁에 군인으로 투입됐다.
일제로부터 아버지 노역에 대한 대가 일부를 돈으로 지급받았지만, 동원된 지 1년 만에 중단됐다.
남태평양 타라와에서 전투가 시작된 1943년 11월 20일부터 같은 달 23일 사이 아버지가 사망한 것으로 최씨는 추정했다.
최씨네 가족은 그 시기보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편으로 전달받은 전사 통지서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 논 3마지기가 전 재산이었던 최씨네 가족은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 삼베를 팔며 생계를 꾸렸다.
최씨는 "20대 초반부터 과부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두 아들 뒷바라지로 고생만 하셨다"며 "배가 고픈 건 둘째 치고 아버지가 없다는 주위의 놀림이나 시선이 가슴속 한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동원돼 함께 한 추억은 없어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하다고도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 수업료(월사금)를 내지 못해 학업을 중단했는데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선 학교에 재입학했다.
최씨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돌아가셨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었다"며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제 이름을 불러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은 게 더 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아버지의 유해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정부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최씨 유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타라와가 있는 남태평양의 키리바시공화국에서 돌아오지 못하다가 지난 9월 미국 국방성에 의해 하와이로 옮겨졌고, 전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봉환됐다.
타라와 전투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정부의 유전자(DNA) 조사 결과 1천117명으로 파악되며,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최씨 외에는 아직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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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동원됐다가 숨진 고(故) 최병연 씨의 유해가 봉환된 4일 오후 전남 영광군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차남 최금수(82)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속내를 풀어냈다.
자그마한 사진 속 군복을 입고 있던 아버지 모습이 유일한 기억이라고 말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아버지 유해를 80년 만에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듯했다.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짓거나 이내 숙이며 눈시울을 붉힌 최씨는 "이제라도 유해가 봉환돼 다행이다"며 입을 뗐다.
최씨가 태어난 지 49일이 되던 1942년 11월 25일 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태평양전쟁에 군인으로 투입됐다.
일제로부터 아버지 노역에 대한 대가 일부를 돈으로 지급받았지만, 동원된 지 1년 만에 중단됐다.
남태평양 타라와에서 전투가 시작된 1943년 11월 20일부터 같은 달 23일 사이 아버지가 사망한 것으로 최씨는 추정했다.
최씨네 가족은 그 시기보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편으로 전달받은 전사 통지서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 논 3마지기가 전 재산이었던 최씨네 가족은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 삼베를 팔며 생계를 꾸렸다.
최씨는 "20대 초반부터 과부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두 아들 뒷바라지로 고생만 하셨다"며 "배가 고픈 건 둘째 치고 아버지가 없다는 주위의 놀림이나 시선이 가슴속 한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동원돼 함께 한 추억은 없어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하다고도 했다.

최씨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돌아가셨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었다"며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제 이름을 불러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은 게 더 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아버지의 유해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정부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최씨 유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타라와가 있는 남태평양의 키리바시공화국에서 돌아오지 못하다가 지난 9월 미국 국방성에 의해 하와이로 옮겨졌고, 전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봉환됐다.
타라와 전투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정부의 유전자(DNA) 조사 결과 1천117명으로 파악되며,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최씨 외에는 아직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