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임대아파트로 홍보·운영…용인시, '용도변경' 위반건축물 통보
명지학원 "회생 절차 진행 중…적임 운영사에 엘펜하임 매각할 것"

"노인을 위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버타운이라고 해서 여생을 보내자는 마음으로 입주했는데 사실상 일반적인 아파트에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
[현장in] "실버타운인데 노인 시설 없어"…명지엘펜하임 불만 목소리
경기 용인시 처인구 소재 '명지엘펜하임'(이하 엘펜하임)에서 12년간 거주 중인 70대 입주자는 3일 연합뉴스에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법인 명지학원이 2004년 용인 명지대 자연캠퍼스 내에 조성한 '엘펜하임'은 336세대, 7개 동으로 이뤄진 실버타운이다.

그러나 이곳 단지 내부 풍경은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고령자가 거주하는 여타 실버타운과 달리 이곳 단지 곳곳에서는 명지대 재학생 등 앳된 모습의 주민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여러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온라인상에 올린 홍보 게시물 가운데서도 엘펜하임을 실버타운이 아닌 '보증금이 저렴한 임대 아파트'로 소개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버타운으로 조성된 만큼 이곳에선 과거 고령자를 위한 셔틀버스·룸 서비스가 제공됐고, 단지 내 복지관에서 사우나, 식당, 의원 등 복지시설도 운영됐으나 2021년 3월부로 모두 폐쇄된 상태이다.

이에 용인시는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지난 3월 23일 엘펜하임에 위반건축물 이행강제금 부과 예고 통지를 내렸다.

엘펜하임의 건축법상 용도가 노인이나 어린이의 복지를 위한 시설인 '노유자 시설'로 정해져 있음에도, 노인주거 복지시설에 필요한 시설들을 폐쇄하고 일반적인 임대아파트로 홍보·운영하는 등 용도변경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한때 명지학원 파산 위기의 결정적 원인이 됐던 '분양 사기 사건'이 있다.

명지학원은 2004년 엘펜하임을 분양·임대하면서 골프장도 조성하겠다고 광고했으나 분양 당시 골프장 건설 허가조차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명지학원은 2007년에야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신청했지만, 용인시가 불허했다.

법적 분쟁에 휘말린 명지학원은 2013년 법원으로부터 분양 피해자 33명에게 총 19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채권자들이 2018년 법원에 명지학원에 대한 파산 신청을 냈다.

여전히 입주자 수십 명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시설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자 명지학원은 2019년 4월 민간 임대업체인 A사에 엘펜하임을 20년간 장기로 일괄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 및 재임대를 맡겼다.

A사는 현재까지 엘펜하임 각 세대에 대해 월세 임대를 하는 등 재임대 사업을 하며 단지 내부 운영 사항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2021년 3월 이곳의 고령자 대상 서비스와 복지관 운영이 중단된 데에도 A사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

A사가 임대 세대를 제외한 입주 세대 50여 곳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과반의 동의를 받아 입주자 관리비를 기존보다 줄이는 조건으로 이같이 조처한 것이다.

[현장in] "실버타운인데 노인 시설 없어"…명지엘펜하임 불만 목소리
실버타운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엘펜하임에 입주했던 일부 고령의 입주자들은 일반 아파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시설에 살게 돼 불편을 겪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2011년부터 엘펜하임에 거주 중인 70대 B씨는 "식당, 셔틀버스 등 평소 잘 이용하던 혜택이 한순간에 없어지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라며 "비록 지금보다 40만원가량 관리비를 더 내야 하지만, 이런 혜택을 누리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아무리 다수결에 따른 결과라고 해도 모두 폐쇄해버리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뜩이나 명지학원 경영 이슈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엘펜하임이 실버타운도, 일반 아파트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운영된다면 주택 가치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약 10년 전 엘펜하임에 임대 분양을 받아 거주 중인 80대 C씨도 "가뜩이나 명지학원이 파산 위기에 빠지면서 아직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데 여러 서비스까지 없어져 불편이 더 크다"며 "명지학원이 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명지학원은 재정적 한계 등으로 엘펜하임을 당초 조성 취지에 맞는 방향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명지학원은 지난 7월 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은 데 따라 2028년까지 엘펜하임을 적임자에게 매각해 채무 변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명지학원 관계자는 "2011년 노인복지법에 신설된 특례 조항에 따르면 2008년 8월 4일 전 승인받은 노인복지주택에 한해서는 60세 미만도 거주할 수 있다"며 "엘펜하임에 노인이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 자체는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버타운이라는 당초 엘펜하임의 조성 취지가 현재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파산 위기로 엘펜하임 운영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 어떻게든 기존 입주자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노력해왔다"며 "최근 매각을 위한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엘펜하임을 정상적인 실버타운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운영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