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중국 기업들이 최근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도 공세를 펼치고 있다. 첨단 모바일용 D램 개발,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대한 11조원 투자 등을 통해 삼성, LG와의 격차를 1~3년 안팎까지 좁힌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기업이 기술 투자와 동시에 ‘저가 판매’를 핵심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어 이들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과 격차 3년…첨단 반도체 추격 거센 中

첨단 메모리·CPU 협공

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중국을 대표하는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최근 “중국 최초의 LPDDR5(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5) D램을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LPDDR5 D램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 제품에 적용되는 저전력 D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019년, 2021년 양산을 시작했다. CXMT는 샤오미, 트랜션 등 자국 스마트폰 제조사로부터 자체 개발한 LPDDR5의 품질 인증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은 선전하고 있다. 중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인 룽손은 지난달 28일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3A6000’을 공개했다. 중국 언론들은 “세계 1위 CPU업체 미국 인텔이 2020년 선보인 CPU와 성능이 같다”고 전했다.

中 차세대 OLED 투자 삼성의 3배

디스플레이 시장도 비슷하다.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제친 중국 기업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관련해서도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1위 패널 업체 징둥팡(BOE)이다.

BOE는 최근 중국 사천성 청두에 약 11조원을 투자해 8.6세대 유리원장(디스플레이 원판) 월 3만20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OLED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8.6세대는 가로 2290㎜, 세로 2620㎜ 크기의 유리원장을 뜻하는 말이다. 8.6세대 공장에서 생산된 패널은 주로 노트북용 디스플레이에 활용한다. 애플이 2025년 맥북에 OLED 패널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BOE의 8.6세대 투자 규모는 삼성디스플레이(4조1000억원)의 세 배에 육박한다. LG디스플레이는 아직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韓, QD 등 미래 시장 열어야

미국이 중국 대상 수출규제를 시작할 때만 해도 중국 기업의 성장 속도가 정체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최근 양상은 좀 다르다. 중국이 미국 규제를 자립의 기회로 삼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의 브래디 왕 연구원은 “첨단 반도체 장비 공급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중국은 꾸준히 반도체 개발과 제조 기술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은 긴장 상태다.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 기술·시설 투자를 단행해 경쟁력을 높이고,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몰아낸 뒤 시장을 장악하는 중국 특유의 전술이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최근 20%가량 가격을 인하하자 DB하이텍, 키파운드리 등 한국 업체도 뒤따라 비슷한 수준으로 단가를 내리며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 기업이 첨단기술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합병(M&A)해 신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최첨단 패키징, 퀀텀닷 OLED 등 신사업분야에서 초격차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