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모양으로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넥슨의 영상. 논란이 된 장면은 외주사인 '스튜디오 뿌리'가 제작했다. /사진=넥슨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손 모양으로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넥슨의 영상. 논란이 된 장면은 외주사인 '스튜디오 뿌리'가 제작했다. /사진=넥슨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남성 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킨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의 집게손가락을 그린 작가가 40대 남성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넥슨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사실상 게임업계 사상 검증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IT노조도 성명을 통해 "있지도 않은 자라를 핑계로 솥뚜껑만 내다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면서 입장을 밝혔다.

노조 측은 1일 "단순한 오해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키운 건 그야말로 게임업계였다"며 "단순한 오해를 사실로 인정하여 사과하고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에 그쳤다면 하나의 조악하고 재미없는, 실패해버린 농담 같은 일에 그쳤을지도 모른다"면서 넥슨의 과도한 사과와 대응을 문제 삼았다.

앞서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영상에 '남성 혐오 손 모양'으로 의심되는 장면이 등장해 논란이 제기됐다. 해당 손 모양은 남성 혐오 여초 온라인 커뮤니티로 알려진 '메갈리아' 등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모양은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집어 드는 형태다. 사회적으로는 '작은 차이' 등을 말할 때 통용돼왔던 제스처이지만, 남녀 갈등 심화 등으로 일각에서는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인다.

문제의 영상 속 집게손가락이 남성 혐오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넣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스튜디오 뿌리에 소속된 한 애니메이터가 "페미니즘에 경도된 게시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속해서 올렸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회사 간의 계약으로 이뤄진 작업물에 개인의 혐오 및 반사회적 사상을 숨겨 넣었다"는 비난 여론이 불거졌다.

노조 측은 "해당 영상의 외주 제작을 담당했다고 알려진 업체 뿌리와 협력관계에 있던 게임 및 게임사들이 연달아 사과문을 발표하고, 그 끝에 결국 뿌리 측에서 제작 담당 직원의 작업 중단 조치를 포함한 사과문을 발표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게임업계의 또 하나의 커다란 흑역사가 되었다"며 "이후 이들이 '집게 손'을 검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흑역사는 매일 갱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논란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저지르지 않는 일개의 외주 업체를 게임업계 차원에서 희생양을 삼은 사태"라며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노동자는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이러한 고통은 설령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매우 부당하고 과중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넥슨에 대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반성해야 한다"며 "참담한 수준에 머무는 게임업계의 무책임과 무분별을 처음 드러낸 곳이 바로 넥슨이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지지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게임 성우를 교체한 2016년의 '넥슨 성우 교체사건'은 페미니즘을 표적 삼은 사상검증의 시작이었다"고 꼬집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도 집게손 논란에 사과문을 발표했던 넥슨과 넷마블 등 게임업계 10곳에 대해 고객 응대 노동자 등 보호조치 특별점검에 나선다. 게임 속 '페미 집게손가락' 논란이 확대되면서 게임사들이 대거 특별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고용노동당국은 일부 유저들의 '페미 색출' '페미 해고 요구' 등을 근로자에 대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게임사들이 이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를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신의 SNS에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던 애니메이터 A씨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신상 정보가 공개되고, 인신공격 등 무차별 공격이 이뤄지는 부분에 대해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