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가 자사 인공지능(AI) 모델로 신소재 개발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AI를 활용해 태양전지 등에 사용할 수십만 개의 소재 후보 물질을 추려내고, 자동 실험 로봇으로 직접 검증까지 하는 방식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첨단산업 분야에서 맞춤 소재를 찾는 데 돌파구가 될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800년간 낼 성과를 단숨에”

딥마인드, AI로 '유망 신소재' 38만개 찾았다
딥마인드 연구진은 29일(현지시간)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에서 “AI를 이용해 220만 개의 새로운 결정구조를 발견했고, 이를 통해 신소재 38만10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한 결정구조 대부분은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화학 지식에서 나올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딥마인드의 AI 도구인 ‘GNoME(Graph Networks for Materials Exploration)’를 활용했다. GNoME는 최신 그래프 신경망(GNN)으로, 소재 데이터베이스(DB)에서 수집한 자료를 학습한 뒤 비율 재조합 등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물질을 찾아냈다. 연구진은 “GNoME 모델을 사용해 그간 이론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실험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던 결정구조의 조합들을 확인한 결과, 재료과학 역사상 이미 발굴된 물질의 수(약 4만8000개)보다 45배 이상 많은 양이 발견됐다”며 “이번 연구는 인류에 알려진 물질의 규모를 크게 확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GNoME의 머신러닝을 사용해 먼저 후보 구조를 생성한 다음 안정성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물질을 찾아냈다”며 “재료과학계가 최근 10년 사이 새롭게 발견한 물질의 수가 약 2만8000개라는 점을 기준으로 볼 때, 이번 연구는 기존의 재료과학이 800년에 걸쳐 낼 성과를 한 번에 이룬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초전도체·배터리 등에 활용

딥마인드는 이번 연구를 두고 “AI의 신소재 레시피”라고 자평했다. 이전에는 새로운 결정구조를 찾아내려면 과학자들이 직접 실험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는 큰 비용과 긴 시간이 들었다. AI를 활용하면 빠르게 최첨단 기술을 개발·발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한 물질 가운데 최적의 신소재 후보 물질 38만1000개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했다. 연구진은 “과학계가 태양전지, 초전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에 참여한 딥마인드의 에킨 도구스 쿠벅은 새로운 화합물들의 잠재적 응용 분야로 다용도 적층 소재나 뉴로모픽 컴퓨팅(인간의 사고 과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인간의 뇌 신경 구조를 모방해 만든 반도체 칩) 등을 꼽았다.

같은 날 네이처에 게재된 또 다른 논문에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와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새로운 물질을 찾는 데 딥마인드의 성과를 일부 활용했다. 이들은 ‘에이랩(A-lab)’이라는 자동 실험 기술을 통해 58개의 목록에서 41개의 신소재를 만들어내 70% 이상 성공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딥마인드는 지난달 단백질 구조 예측 AI 도구인 알파폴드의 실적을 공개했다. 그간 수개월 이상 걸리던 단백질 구조 분석 작업을 수일 이내로 단축하는 데 성공해 생물학 분야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딥마인드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박지용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위원은 “새로운 결정구조를 단기간에 220만 개 탐색해 신소재를 38만 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숫자”라며 “이는 현재까지 과학계에 알려진 전체 결정구조 수보다 많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신물질 하나를 발견하면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는 게 박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상온·상압 초전도체 주장 물질 ‘LK-99’를 언급하며 “신물질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실리콘 반도체처럼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김진원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