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이가 보내는 경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초서는 우드스톡에서 꾀꼬리를 곁에 두고
예순에 캔터베리 이야기를 썼지.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여든에 파우스트를 완성했고.
( …중략… )
우리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네.
비록 차려입은 옷은 다르지만
노년은 젊음에 못지않은 기회인 것을,
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가득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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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펠로에게 배우는 노년의 지혜 [고두현의 아침 시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1807~1882)의 이 시를 읽다가 마지막 5행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비록 차려입은 옷은 다르지만/ 노년은 젊음에 못지않은 기회’라는 구절과 ‘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가득하다’는 대목에는 두 번씩 줄을 그었죠. 원래는 엄청나게 긴 시인데, 그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앞부분에 나오듯이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는 예순에 최고 걸작 <캔터베리 이야기>를 썼고, 독일 문호 괴테는 여든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지요.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팔순을 넘기면서 성베드로 성당 천장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했고,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아흔에도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는 90세에 하루 6시간씩 연습하며 “난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62세에 ‘지동설’을 확립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68세에 ‘대성당’을 조각한 오귀스트 로댕, 71세에 패션계를 평정한 코코 샤넬, 62세 때 광견병 백신을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93세 때 기자로부터 “언제가 인생의 전성기였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열심히 저술 활동을 하던 60대 후반이었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60~75세가 가장 빛나는 골든 에이지

스위스 베른대 연구진에 따르면 인간의 자존감은 4~11세에 높아지기 시작해서 중년까지 완만하게 상승해 60세에 최고치에 이르고, 70세까지 이를 유지하다가 서서히 낮아집니다. 신체적 자립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75세부터죠. 유럽과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고령자 기준을 75세로 잡고 있습니다.

일본 노화 연구자들은 “60~75세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골든 에이지(golden age·황금기)”라고 평가합니다. 은퇴 직후의 이 시기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4만 시간이 넘지요. 20세부터 40년간 8시간씩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노동시간(11만6000여 시간)보다 훨씬 깁니다.

우리 주변에 노년의 지혜를 일깨우는 일화가 많습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경찰과 소방관 500여 명이 사흘 동안 찾지 못한 실종 아동을 30분 만에 찾아내 화제를 모은 78세 남성 오바타 씨. 그가 아이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원봉사자인 그는 “애들이 길을 잃으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며 “이 점에 착안해 뒷산을 집중수색한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상속의 지혜’도 눈길을 끕니다. 옛적 한 노인이 소 17마리를 남기고 죽으면서 큰아들에게 2분의 1, 작은아들에게 3분의 1, 막내에게 9분의 1을 가지라고 유언했습니다. 아무리 나눠도 답이 나오지 않자 아들들은 동네 어르신에게 답을 구했지요. 그는 “1마리를 빌려줄 테니 18마리 중 각각 9마리, 6마리, 2마리를 갖고 남은 1마리는 다시 날 주게”라며 멋지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또 “두 마리 말 중 어미와 자식을 구분해 보라”는 수수께끼에 “풀을 줘서 먼저 먹는 쪽이 새끼”라고 답해 목숨을 건진 얘기 등 관련 예화는 수두룩하지요.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 좋아져

연륜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노년의 지혜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는 사실을 임상학적으로 밝혀냈습니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는 기억 중심의 유동지능(流動知能·fluid intelligence)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結晶知能·crystallized intelligence)이지요.

유동지능은 연산·기억력 등 생래적인 것으로 한창 교육받는 젊은 시절에 활성화됩니다. 반면 결정지능은 훈련·판단 등 후천적인 것으로 사회 경험이 풍부한 노년 시기에 강화됩니다. 이것이 노인들의 의사 결정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요.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70세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 여성 경영자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멘토 역할’을 해 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나이만 들었다고 존경받는 건 아닙니다. 자칫하면 노욕(老慾)이나 노탐(老貪), 노추(老醜)에 빠질 수 있지요.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노인의 지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혜로운 노인’이 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야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지요.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2000년 전에 말했습니다.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미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며, 장년은 위엄 있고,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돼야만 거둘 수 있는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