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중국산' 무시했는데…한국 긴장케 한 시진핑의 야심 [글로벌 리포트]

2060년 ‘넷제로(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한 중국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신흥 에너지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생에너지와 원전이라는 '쌍두마차'를 함께 끌고가고 있다. 물론 중국은 여전히 석탄 발전 비중이 3분의2에 달하는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이다. 중국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으로부터 '더러운 철강'을 만드는 환경 오염국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이 변하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미·중 양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협력하기로 한 것도 에너지 전환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이 정치적 논쟁으로 머뭇거리는 사이 세계 최대 원전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원전 수출을 위한 기술 자립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서북부 사막 지역에 영국의 총 발전량(100GW)의 4배가 넘는 455GW 규모의 태양광·풍력 단지 구축에 돌입하는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글로벌 기후위기의 주범이었던 ‘더러운 철강’의 나라 중국이 그들의 약속대로 2060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철강’을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中, 넷제로·에너지 수요 대응에 원전 활용

원전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은 눈부시다. 중국은 미국의 원전 산업이 후퇴하는 1980년대에서야 원전 개발을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경제를 더 촉진하기 위해선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요했고, 원전도 하나의 대안이 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총 에너지생산량은 2000년 1280TWh에서 2020년 7600TWh로 급증했다. 중국은 그동안 전력 생산을 충족하기 위해 저렴하고 짓기 편한 석탄 에너지를 주로 사용해왔다.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67%에 달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대기질 악화로 이어지면서 중국이 환경 오염의 원흉으로 꼽히는 배경이 됐다. 이에 무탄소 전원인 원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더 커졌다.

중국은 현재 55기의 원전을 운영 중이다. 중국의 원전 총 설비용량은 약 5만3181MW로 미국·프랑스에 이어 3위다. 건설중인 발전소는 21기(2만1608MW)로 세계 전체 신규 원전의 약 30%를 차지하는 등 타국을 압도하고 있다. 계획대로 건설을 완료하면 중국의 원전설비 용량은 프랑스를 뛰어넘어 미국을 추격하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원전은 중국보다 노후화돼 있다. 일반적으로 원전은 60~80년 동안 운전 가능한데 미국 원전의 불이 꺼지면 중국은 더 빠른 속도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2기의 신규 원전 상업운전을 개시했고, 5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삽을 뜬 상태다. 작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2기는 푸칭 6호와 홍옌허 6호이고, 착공한 5기는 톈완 8호, 쉬다바오 4호, 싼먼 3호, 하이양 3호, 육풍 5호 등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 원전 평균 설비 이용률은 91.67%에 달하는데, 원전 발전량은 417.7TWh로 전년 대비 2.5% 증가해 총 발전량의 5%를 차지하고 있다. 10년전 약 2%에서 대폭 향상된 수치다. 중국은 2년 뒤인 2025년까지 비화석 연료에 의한 발전량을 약 39%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원전 설비 용량도 2025년까지 70GW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계획에 따르면 2035년까지 원전은 전력 구성의 약 1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넷제로를 목표로 한 2060년에는 원전 비중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SMR 상용화 가장 빠르다

'차세대 원전', '원전의 미래'로 불리는 SMR 개발 분야에서도 중국의 속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SMR은 원자로 모듈의 공장생산이 가능한 전기 출력 300MW 이하의 원자로를 의미한다. 초기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고,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운전 유연성이 커서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카드로 각광받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세계 SMR 시장은 2035년 63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영국·러시아·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SMR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다. 시장 선도를 위해 개발되고 있는 SMR 모델만 약 80여종에 달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SMR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조기 실증 및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 주도로 여러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뉴스케일·테라파워·엑스에너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경제성 문제로 미국 유타주에서 추진되던 뉴스케일의 최초 SMR 건설 사업이 최근 좌초됐다. 올초 시행한 경제성 평가에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전력 단가가 MWh당 89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2년 전보다 50% 넘게 오른 수치다. 이 탓에 미국 유타주의 평균 전력 소매가격인 MWh당 88달러를 초과해 경제성을 맞추지 못했다.

ACP100 돔 설치 장면

반면 정부가 주도하는 중국의 SMR은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미국보다 오히려 이 분야에서 혁신의 속도를 더 빨리 끌어올리고 있다. SMR은 물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경수로 방식(3세대 원전)과 초고온가스·고속중성자로·요윰염로 방식의 4세대 원전으로 구분된다. 중국은 4세대 원전인 고온가스로 SMR의 실증로 건설을 마치고 2021년 12월 이미 송전을 개시했다. ‘고온가스로 페블베드 모듈(HTR-PM)’을 통해서다. HTR-PM은 210MW 터빈을 구동하는 2기의 소형 원자로로 구성돼 있다. 1기의 원자로는 2021년 9월, 2기는 11월에 각각 첫 임계에 도달했다. 이 발전소는 중국 화넝(47.5%)이 이끄는 컨소시엄이 소유하고 있고, 중국핵공업집단공사 자회사인 중국핵공업집단공사(32.5%)와 칭화대 원자력신에너지기술연구소(20%)가 연구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해외에 HTR-PM의 현황을 정확히 알리거나 수출에 나서지 않고 있어서 상업성을 갖췄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아직 HTR-PM은 실증로 수준으로 평가절하되고 있지만, 3세대 원전인 경수로 방식의 ACP100도 상업운전에 성큼 다가선 상태다. ACP100은 중국이 2010년 개발에 돌입해 2014년에 예비 설계를 완료한 중국 자체 SMR이다. 2016년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성 검토를 통과한 세계 최초의 SMR이기도하다.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는 2019년 7월 중국 남부의 섬 지역인 하이난성 창장에 ACP100 원자로를 건설한다고 공식발표했다. 2021년 3월과 12월에 두 개의 원자로 건설이 시작됐고, 지난 3월 창장 SMR 프로젝트 원자로 건물의 주요 내부 구조 설치가 완료됐다. 중국 정부는 2026년 말에 ACP100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CNNC는 ACP100에 대해 “세계 최초의 상업용 육상 기반 SMR”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창장 ACP100 원자로가 완공되면 연간 10억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는 52만6000 가구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원전 수출 박차...韓과 경쟁

중국은 전세계에 원전 건설 바람이 불자 원전 수출을 핵심 추진 과제로 선정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국무원 산하인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아래에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 중국광핵집단유한공사(CGN), 중국전력투자집단공사(SPIC)가 중국 노형 개발 및 원전수출 추진을 맡고 있다. 중국의 주력 수출 노형은 HPR1000과 CAP1400이다.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과 중국광핵집단유한공사(CGN)에서 공동 설립한 화룡국제핵전기술공사가 HPR1000 노형의 수출을, 중국전력투자집단공사가 CAP1400의 수출을 전담하는 구조다.

중국은 착실히 신규 원전 생산역량을 끌어올리면서 주요 설비 국산화율을 90%이상 끌어올린 상태다. 그 결과 중국핵공업집단공사와 중국광핵집단의 원자로 설계를 통합한 HPR1000 설계의 경우 파키스탄 카라치 원전 2, 3호기에 채택됐다. 파키스탄 프로젝트는 HPR1000 설계의 해외 최초 실증 원자로 프로젝트가 됐다. 카라치 원전은 2호기가 2021년 5월, 3호기가 2022년 4월에 각각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영국 브래드웰 프로젝트에서는 중국광핵집단의 UK-HPR1000의 채택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이밖에도 아르헨티나, 이란, 카자흐스탄, 케냐, 이집트, 수단 등이 중국의 주요 공략 대상국이다.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 원전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국도 중국과의 원전 수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과 중국의 원전 수주 경쟁의 최전선은 사우디아라비아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펼치고 있는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중국과의 외교 접점을 늘리는 동시에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 달라”고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1.4GW 규모 원전 2기 건설을 추진 중인 사우디는 미국에 ‘우라늄 농축 허용’을 요구하면서, 이를 미국이 수용한다면 사우디 원전 건설을 미국의 우방인 한국에 맡기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 농축 허용은 곧 핵무기 생산 능력 확보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원전을 수주할테니 핵무기를 달라는 요구다.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는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와 중국이 후보로 초대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가 사실상 후보군에서 제외된 점을 감안할 때 한국과 중국의 2파전 양상이다. 사우디는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서 시공 능력을 입증한 한국을 내심 바라고 있다. 단 한국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 한국은 미국과 원전 동맹을 맺고 있어서 미국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사우디와 계약을 맺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이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사우디가 굳이 한국을 택할 이유도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사우디는 원전 건설을 맡길 또 다른 후보로 중국을 고려하고 있다. 사우디가 한국이 아닌 중국을 원전 파트너로 선택하는 것은 사우디가 중국과 ‘원전 건설+우라늄 농축 기술 전수’라는 패키지딜에 합의했다는 의미다.

중국의 거대한 태양광 프로젝트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원전 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 화석 연료 수요를 억제하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 제로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활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기지를 짓고 있다. 총 455GW 규모에 달하는 방대한 풍력터빈과 태양광 패널 설치를 통해서다. 이는 중국을 제외한 그 어떤 국가보다 더 많은 청정에너지 발전 용량이다. 전세계에 그 어떤 벤치마킹 사례가 없을 정도로 방대한 프로젝트라는 평가다.

블룸버그 재인용

시 주석은 2021년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를 만드는 사막 개발 프로젝트 구상을 대내외에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사막에 짓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통해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2022년의 3배가 넘는 약 3.9TW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올해 한해 동안만 300GW 이상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원전 약 300기를 설치한 것과 같은 수준의 설비용량이다. 지난해 전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총량이 338GW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의 설비 확충인 셈이다.

455GW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단지 프로젝트는 중국 북쪽의 고비 사막과 서쪽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포함한다. 이 사막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일조량이 일정하고 바람이 꾸준히 부는 넓은 하늘과 평원 등 재생 에너지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인구 밀도가 낮아서 주민 수용성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적다. 경제적 이점도 있다. 주요 농업이나 부동산 개발 사업이 없기 때문에 토지가 저렴하다. 이는 발전단가 인하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중국의 재생에너지 사막 기지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 공급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문제는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수요지로 옮기는지 여부다. 초고압 송전선 네트워크를 깔지 않으면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 등에서는 주민 반대에 부딪혀 엄두도 내기 힘들지만, 중국은 이미 3000억달러에 달하는 새로운 전력망 네트워크 구축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사막에서 만들어진 청정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전력망 인프라를 더 확충해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 청정 전력을 공급하는 게 첫번째 방법이다. 아니면 중국 동부의 공장을 서부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쓰촨성과 윈난성 등으로 청정에너지가 필요한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거나 중국의 주요 공장을 이 지역으로 옮기는 방식을 통해서다.

태양광·풍력·원자력·수력 발전 용량은 이제 중국의 에너지 수요 증가를 충족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능가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러한 속도가 유지될 경우 중국의 탄소배출량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구조적 감소' 구간에 진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를 감안할 때 2060년 넷제로 달성 선언은 중국의 단순한 허풍이 아닐 공산이 크다. 오히려 국가 주도로 각종 에너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큰 잡음이나 반대없이 원전 및 재생에너지 확충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에너지 해외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 주석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다. 그 과정에서 자국 내에서 수많은 실증 프로젝트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자국 원전 산업 전체가 시공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국가가 갖지 못한 중국만의 강점으로 손꼽힌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실체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중국의 원전 수준이 상당할 것"이라며 "특히 SMR 분야에서 중국이 가장 빠른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