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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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흙탕에서 프랑스의 왕관을 되찾았고, 내 칼끝에서 그것을 씻었다. 이제 국민의 뜻에 따라 내 머리에 쓴다."

1804년 12월 노트르담 대성당. 일국의 왕을 넘어 유럽의 지배자로 거듭나고 싶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교황을 파리로 데려와 대관식을 거행했다. 교황의 기름 부음이 끝나자 나폴레옹은 벌떡 일어나 직접 왕관을 썼다. 이 야심만만한 인물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장면은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오는 6일 개봉하는 애플TV+ 오리지널 영화 '나폴레옹'은 명화 속 장면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 올겨울 개봉하는 해외 영화 중 화제의 중심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 '조커'(2019)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을 연기했고,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했다. '글래디에이터'(2000)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 둘이 23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나폴레옹'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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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근대 국민국가의 기초를 다진 위대한 리더이자 종신집권을 꾀하며 혁명 정신을 퇴보시킨 독재자다. 뛰어난 전술로 유럽을 호령한 전쟁 영웅이지만, 동시에 300만명이 넘는 프랑스 군인을 사지로 내몬 장본인이다. 아내 조제핀에게 보낸 열렬한 애정 공세에도 그녀의 외도를 막지 못한 비운의 사내이기도 하다.

그의 복잡다단한 생애를 한 편의 영화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158분의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몇몇 사건들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사전에 역사적 배경지식을 챙겨가지 않은 관객은 중간중간 흐름을 놓칠 수도 있겠다. 영화는 격변하던 18~19세기 유럽의 사회상과 군사 지도자로서의 나폴레옹, 그리고 아내 조제핀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는 세 가지 축에 집중했다. '프랑스, 군대, 조제핀'이란 그의 유언처럼 말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인상적이다. 실전에서 갈팡질팡하는 신출내기 포병 장교 시절부터 무덤덤한 표정으로 발포 명령을 내리는 노년의 모습까지 두루 소화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기를 틈타 황제가 되려는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다가도, 조제핀의 유혹에 무너져내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폴레옹'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제공
'나폴레옹'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제공
조제핀 역을 맡은 바네사 커비의 존재감이 극의 입체감을 더한다. "나는 당신 없인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라는 남편의 고백을 끌어낼 정도로 존재감을 뽐낸다. 끝내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남편과 조국을 위해 넘치는 에너지를 감춰야 했던 복잡한 인물을 표현했다. '에일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 '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 등 여성 캐릭터들에 특히 많은 공을 들여온 감독의 내공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역사 영화, 특히 전쟁 장르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감독의 작품인 만큼 장대하고 다채로운 전쟁 장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툴롱 전투와 이집트 원정, 워털루 전투 등 나폴레옹이 지휘한 6개의 주요 전투들이 묘사된다. 화포를 활용한 공성전부터 나폴레옹 전술을 상징하는 전초전과 소규모 사단 편제를 통한 난전까지 다양하다.

과거 전투를 사실과 가깝게 연출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선 꽁꽁 언 강물 위로 적을 유인한 나폴레옹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그를 몰락으로 이끈 워털루 전투 장면에선 프랑스 기마병을 궤멸시킨 영국군의 네모반듯한 방진 대형을 확인할 수 있다.
'나폴레옹'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제공
'나폴레옹'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제공
리들리 스콧과 나폴레옹의 인연은 약 반세기 전 스콧의 데뷔작 '결투자들'(1977)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프랑스군 장교의 결투를 담은 작품이다. 감독이 숱한 히트작들을 선보이면서도 줄곧 나폴레옹을 다룬 영화를 숙원 사업으로 꼽아온 이유다. 스콧은 "나폴레옹의 역사는 곧 현대사의 시작이며, 그는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라며 영화 제작을 꿈꿔온 이유를 설명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