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놓고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두 명의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이고 있고, 국민의힘은 탄핵안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약속 없이는 본회의를 열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올해도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해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카드를 들고나와 예산안 처리가 지연됐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 후 2년 연속 윤석열 정부 핵심 인사의 거취를 예산안 처리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 “단독 수정안도 준비”

2년째 탄핵으로 예산안 발목잡는 민주당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7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간사 간 협의에 들어간다. ‘소(小)소위’로 불리는 간사 간 협의는 서삼석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인 송언석 의원·강훈식 의원, 기획재정부 2차관과 예산실장 등 극소수 인원이 참여해 비공개로 진행된다.

소소위는 오는 30일까지 과학기술 연구개발(R&D)과 원전, 청년 일자리 사업, 지역화폐 및 새만금 지역 예산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사안을 놓고 논의하게 된다. 이때까지 논의를 마치지 못하면 국회법에 따라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본회의에 일단 자동 부의된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소소위 협의가 불발될 경우에 대비해 정부안에서 주요 사업 예산을 삭감한 자체 예산 수정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회 고유 권한을 활용해 현 정부의 주요 사업만이라도 ‘칼질’하는 감액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법정 시한을 넘겨 정부 예산안 원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카드인 것이다. 감액만 들어간 수정안 자체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감액 수정안은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카드다. 정치권 관계자는 “감액 수정안은 정부 원안 통과를 막기 위한 일종의 협상 카드”라며 “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尹 핵심 인사 거취 내세워 예산 밀당


민주당 안팎에선 국민의힘이 이동관 위원장과 검사 2명(손준성·이정섭)의 탄핵소추안 처리를 막으려고 의도적으로 예산안 협의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의심한다. 민주당은 30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인 다음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본회의 보고 24시간 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30일, 1일 본회의는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일 뿐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본회의를 열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정쟁용 탄핵을 멈추고 민생과 예산에 집중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손으론 이 위원장 탄핵을 압박하고, 다른 한 손으론 예산안 협상에 나서는 민주당 모습이 지난해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카드를 들고나왔다.

박홍근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겠다”며 “예산안 협상이 결렬돼도 해임건의안만큼은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이 장관 해임건의안은 지난해 12월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예산안은 이보다 늦은 24일 처리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자 올 2월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위원장 탄핵은 예산 협상용이 될 수 없다”며 “탄핵과 예산안 둘 중 하나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둘 다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