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 23일 오후 5시 20분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23일 진행한 HMM 매각 본입찰에 하림그룹, 동원그룹 등이 참여했다. 입찰 결과는 이달 말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 여의도동 HMM 본사에서 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23일 진행한 HMM 매각 본입찰에 하림그룹, 동원그룹 등이 참여했다. 입찰 결과는 이달 말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 여의도동 HMM 본사에서 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하림그룹은 23일 HMM 매각 본입찰 서류 제출을 한 시간여 남겨 놓은 오후 4시까지 최종 입찰 참여 여부와 인수 희망가를 놓고 ‘끝장토론’을 벌였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주재로 그룹 최고위 관계자만 모여 비밀리에 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은 참전. 매각주관사인 삼성증권의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대기 중이던 하림 실무진은 마감 시간을 30여 분 남겨 놓고 서류를 제출했다.

눈치를 살피던 동원그룹 실무진은 마감 10분 전 서류를 냈다. LX 관계자는 입찰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인수 희망가, 하림이 더 높게 써내

하림·동원 입찰가 수백억差 '박빙'…정성평가 승자가 HMM 품을 듯
삼성증권은 본입찰을 마무리하고 곧장 평가 작업에 들어갔다. 매각 측은 인수 희망 가격 외에 자금 조달 계획과 인수 뒤 경영계획 등을 종합 평가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입찰 결과가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인수 후보군에 이르면 1주일 내 평가를 마무리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수도 있다고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은 인수 희망가로 6조3000억원대를 적어냈고, 하림은 이보다 수백억원 더 높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에선 하림이 앞섰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평가다. 산은이 인수 희망 가격 외에 자금 조달 계획과 인수 뒤 경영계획 등을 종합 평가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두 기업은 인수전을 준비하며 그룹 자금력을 총동원해 인수 자금 마련 계획을 세웠다. 하림은 인수금융을 포함해 최대 6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다. 컨소시엄을 함께 꾸린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가 7500억원을 마련하고, 우호 세력인 호반그룹의 도움도 받는다. 팬오션이 5000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하면 호반에서 이를 받아주기로 했다.

동원은 재무적투자자(FI)의 손을 잡지 않고 인수금융도 최소화하는 전략을 마련했다. 산은이 재무적 안정성을 고려해 자기자본 비율을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로 보겠다고 공언한 데 따른 대응이다. 동원은 본입찰을 열흘가량 앞두고 사업 시너지 등을 고려해 인수 주체를 그룹 지주사인 동원산업에서 동원로엑스로 바꾸기도 했다.

○‘승자의 저주’ 우려

이날 기준 HMM 시가총액은 11조2520억원이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 57.9%(3억9879만 주)의 시가는 6조5100억원에 이른다. 최근 30일 주가의 가중산술평균 주가로 보면 6조1000억원 수준이다.

산은은 시가를 기준으로 최소한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매각 예정가격을 6조원대 초반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할 경우 유찰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거의 붙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분 희석 효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HMM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형성됐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은이 유찰을 피하기 위해 현실적인 수준에서 매각 예정가격을 정하면서 유효 입찰은 성사됐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매각 유찰은 피한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HMM을 품을 경우 ‘승자의 저주’가 우려된다. 이미 해운업황은 고꾸라진 상황이다. 올 3분기 HMM의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97% 급감했다.

두 기업 모두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인수대금을 마련할 때 대규모 차입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글로벌 금리 인상 여파로 최근 인수금융 금리는 연 7~8%대에 형성돼 있다. 3조원을 연 8%에 빌리면 이자 부담만 1년에 2400억원에 달한다.

HMM이 보유한 12조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인수 이후 끌어다 쓰기도 어렵다. 매각 측은 주주 간 계약(SHA)을 통해 3년간 HMM 연간 배당을 5000억원 선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 이후에는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하고 있는 남은 영구채가 인수자의 어깨를 짓누른다. 산은과 해진공은 1조6800억원 규모의 잔여 영구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 영구채는 내년과 2025년에 차례로 콜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시점이 도래한다. 산은과 해진공은 배임 우려를 의식해 기본적으로 영구채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산은과 해진공이 잔여 영구채를 모두 주식으로 바꾸면 또다시 정부가 HMM의 2대 주주가 된다. 이번에 4억 주를 사간 인수자 측과의 지분율 격차는 7%포인트에 불과하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