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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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복원의 불씨를 막 살리려는 참이었는데 예산 삭감이라니 허탈합니다. 집단 대응에라도 나서야 하는 걸까요.”(장병기 BHI 회장)
"원전예산 전액삭감…살아나던 생태계 또 파괴"
국회가 혁신형 소형모듈원전(SMR) 기술 개발 사업을 포함한 원자력발전 분야 예산 1814억원을 전액 삭감하자 원전 관련 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원전업계는 “원전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동”이라며 예산 복구,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즉각적인 구제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기 화성시에서 30여 년간 원전 보조기기를 제작해온 중소제조업체 대표 A씨는 “불과 지난주에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원전 수출 첫걸음 프로그램 발대식’이 열릴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며 “원자력산업으로 오려던 예비 인재가 다 다른 분야로 빠질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경남 김해시에서 원전 부품가공업체를 운영하는 김곤재 세라정공 대표는 “태양광은 기저 전력이 아니어서 산업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며 “내년 투자 계획을 다 짜놨는데 갑작스러운 조치로 타격이 어마어마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남 창원의 한 원전 부품가공업체를 운영하는 B 대표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원전 재생 예산까지 모두 없애니 재기해볼 의지조차 안 생긴다”며 “원전업체들이 집단행동에라도 나서야 할 판”이라고 발을 굴렀다.

이번 예산 삭감 조치 전까지 각종 원전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가 추진돼 원전 중견·중소기업들은 수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국 방문 기간에 “영국과의 협력 지평을 인공지능, 원전, 바이오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로 대폭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정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도 한 달 전까지는 우크라이나 외교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SMR 기술 수출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로 원전 예산이 전액 삭감되며 차세대 원전인 SMR 개발 계획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SMR 시장 생성 단계에서 예산 삭감으로 국내 원전 기업들의 개발 작업이 중단되면 해외 개발사들이 국내 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도 “기존 설비로는 SMR에 대응할 수 없어 대형 원전과 SMR에 아예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며 “이렇게 불확실성이 커지면 모든 원전 관련 기업의 투자가 올스톱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정치 논리로 국가의 백년대계인 에너지 체제와 연구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이 모여 부처에서 짠 예산을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전액 삭감하는 것은 폭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원전업계 C 대표는 “과학과 기술은 이념 논리,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안 되는 영역”이라며 “원전 예산은 전액 삭감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예산을 늘린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유림/강경주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