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왜 마누라는 빼라고 하셨습니까?’

책의 부제부터가 다분히 도발적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을 때, 삼성의 한 주재원이 현지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 직원은 일본에서 이 회장이 주재한 ‘삼성 신경영 오사카 회의’를 회장 비서실 전략기획팀과 함께 준비하고 진행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의 중역들이 양적 성장과 한국 1위 기업에만 만족하고 있다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한 말이 그 유명한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였다. 이 전 회장은 주재원의 질문에 “마누라를 바꾸기는 너무 힘들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회장님, 다 바꾸라면서 마누라는 왜 빼라고 하셨습니까?" [책마을]
사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TV가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일등공신이라고 자부하는 전직 ‘삼성맨’ 이승현 인팩코리아 대표가 쓴 <‘최강 소니TV’ 꺾은 집념의 샐러리맨 – 이승현의 세상도발>(꽁치북스)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1992년 말 삼성그룹 일본 주재원으로 출국해 약 10년 근무했다. 주재원 근무 때 그는 전자상거래로 삼성 LCD(액정 화면) 모니터 현지 판매에 성공했다. 이 경험은 본사로 돌아온 이후 LCD TV 사업화를 책임지는 업무를 맡는 계기가 됐다. 당시 TV시장은 소니와 도시바 주도의 프로젝션 TV, 파나소닉 주도의 PDP TV, 샤프의 LCD TV가 디지털 TV 표준을 놓고 사생결단 경쟁의 불꽃이 튀었다. LCD TV를 끝까지 밀어붙인 삼성전자가 결국 일본 ‘빅3’를 제압하고 세계 1등 TV 메이커가 되었다.

저자는 그 실무 책임자다. 그가 주재원 시절인 1990년대 삼성의 전자 제품은 일본에서 저가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일본 최대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秋葉原)’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은 도쿄에 신규사업팀을 만들었다. 신규사업팀장을 맡은 그에게 삼성전자 브랜드 인지도를 상향시키고 저가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런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취를 거둔 과정이 책에 소개돼 있다.

"회장님, 다 바꾸라면서 마누라는 왜 빼라고 하셨습니까?" [책마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자상거래가 비법이었다.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은 전자상거래에 익숙하지 않았고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다. 소비자 입장에선 직접 보지도 않은 물건을 선불로 구매하는 전자상거래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더욱이 TV 모니터는 14인치가 원화로 100만 원이 넘었고, 17인치는 200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

그의 팀은 일단 홈페이지에 접근이 가능한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정하고 홈페이지와 24시간 콜센터를 개설했다. 결제 완료 시 주문 다음 날 일본 전국 어디에서나 제품을 배달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불량이나 고장이 발생하면 무조건 완제품으로 교체해준다고 약속했다. 24시간 콜센터는 당시 일본에서도 거의 선보이지 않았던 매우 앞선 서비스였다. 요즘은 익숙해진 로켓배송, 100% 교환, 환불 제도를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준비를 충분히 후에 그의 팀은 제품을 직접 보고 싶어 할 고객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회장님, 다 바꾸라면서 마누라는 왜 빼라고 하셨습니까?" [책마을]
그는 전자업계의 후발주자 삼성이 ‘LCD TV’로 종주국 일본을 추월한 요인 세 가지를 꼽았다. “최고경영진의 과감한 도전과 투자, 고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일관된 예술적인 전시와 광고,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해 낸 책임자의 역량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자산업의 한국’ 현대사 이면을 볼 수 있고, 삼성의 일본 진출기를 살펴볼 수 있는 현장감 있는 책이다.

오랜 주재원 생활로 들여다본 일본과 일본인, 특히 일본 기업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한 ‘샐러리맨’이 진력을 다해 추구한 가치는 지금 MZ세대에게도 울림이 될 만하다.

허원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