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대표 "K뮤지컬 제작능력 세계적…車·반도체 같은 효자상품 될 것"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의 유명 뮤지컬이 한국을 찾을 때 오리지널 공연팀이 직접 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제작사부터 배우, 스태프까지 투어만을 위한 공연팀을 따로 꾸리는 게 일반적이다. 값비싸게 들여온 일부 내한 공연의 수준이 관객의 기대를 미처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내한 공연의 제작 관행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선 곳이 있다. 국내 주요 공연기획사 중 하나인 EMK뮤지컬컴퍼니는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아시아 투어권을 확보했다. 아시아 전역에서 영어로 공연할 수 있는 독점권을 따놓은 것. 김지원 EMK엔터테인먼트 대표(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사진)를 서울 도곡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인기 뮤지컬이다. 수녀원에 숨어든 한 무명 가수가 성가대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골드버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이 뮤지컬은 200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공연했다.

김 대표는 “2017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국내에 이 작품을 들여왔을 때 제작 과정에서 조명 하나를 추가로 다는 것도 일일이 허락을 맡아야 하는 등 한계가 있었다”며 “그동안 길러 온 제작 능력으로 직접 공연의 수준을 높여 아시아 다른 나라에 팔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얼마 전 부산에서 먼저 개막한 이 공연을 준비하기까지 꼬박 3년의 시간을 들였다. 김 대표는 미국에 건너가 배우와 스태프 등을 직접 캐스팅하고 꾸렸다. 주인공 돌로리스 역엔 지난해 미국 공연에서 같은 역할을 맡은 배우 니콜 바네사 올티즈를 캐스팅했다.

“서울 포함 국내 15개 도시에서 공연한 뒤 6~7개 국가 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산을 제작 허브로 삼으면 아시아 내 다른 국가 입장에서도 비용과 시간적 측면에서 크게 절약이 가능하죠. 국내 뮤지컬 제작 수준을 해외에 널리 알릴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에 EMK가 확보한 아시아 투어권은 아시아 전 지역에서 ‘시스터 액트’ 영어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권리다. 각종 항공료와 운송비 등 부대비용을 줄여 공연 투자 및 수익을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스터 액트’는 지난 4일 부산 소향씨어터에서 개막해 오는 21일부터는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공연업계에서 EMK는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 등 유럽 라이선스 뮤지컬을 국내 정서에 맞게 무대화해 흥행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뮤지컬 ‘웃는 남자’ ‘프리다’ ‘베토벤’ 등 창작 뮤지컬도 만든다.

김 대표는 한국의 뮤지컬 제작 능력과 공연 시장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공연업계로부터 한국 뮤지컬은 배우부터 무대, 프로그램북까지 전반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2~3개월이 넘는 장기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시장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해외 출장을 가서 ‘한국에서도 뮤지컬 공연을 한다’는 걸 알리기에 바빴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이제는 거꾸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협업하자며 연락이 오기도 한다”며 “‘K뮤지컬’이 언젠가는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효자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