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그제 울산에서 전기차(EV) 전용 공장 건설에 첫 삽을 떴다. 축구장 80개 면적에 2조원을 투입해 2026년 1분기부터 연 20만 대 생산능력의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첫 차종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초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결정됐다. 울산 전용 공장은 현대차가 29년 만에 국내에, 그것도 ‘자동차산업의 심장’인 울산에 짓는 생산시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돼 기공식 행사장에 울려 퍼진 정주영 선대회장의 말처럼, 내연기관차에 이어 전기차에서도 “머지않아 세계시장을 휩쓰는 날”을 앞당길 도전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현대차의 과감한 투자 시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고금리에 따른 구매력 약화, 부족한 충전 인프라, 내연기관차 대비 약 30% 높은 가격 등이 복합 작용해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유럽 등의 완성차 업체들이 당초 계획한 전기차 공장 건설을 잇달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는 이유다. 내연기관 시대의 강자들이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미국 테슬라, 중국 비야디(BYD)의 급성장에 놀라 다급하게 전동화 전환에 나섰다가 판매 부진과 전기차 적자 확대로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와 달리 현대차는 일찌감치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과 생산을 시작해 세계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차·기아의 올 1~3분기 전기차 등록 대수는 총 6만3916대(점유율 7.5%)로, 순수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57.4%)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전체 신차 판매에선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어 3위를 유지할 게 확실하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쟁사들이 주춤할 때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전기차 시장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게 현대차의 전략이다. 시장 판도로 볼 때 현대차·기아의 최종 경쟁 상대는 결국 테슬라와 BYD가 될 것이다. 미국,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모든 시장에서 맞붙어야 한다. 좁은 내수시장에도 불구하고 세계 ‘톱3’의 기적을 일군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판매와 수익성에서도 승전보를 전해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