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인구감소의 역습…'물류 2024년 문제'⑫에서 계속
싱싱하고 맛있지만 1095엔(약 9600원)인 딸기와 선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842엔인 딸기. 소비자는 어느 쪽을 고를까. 오는 4월부터 일본의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빠르지만 더 비싸거나 저렴하지만 느린 서비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물류 2024년 문제' 때문이다. 물류 2024년 문제란 오는 4월부터 트럭 운전기사가 부족해 택배를 포함한 물류의 상당 부분이 멈추는 사태를 말한다. 일본의 주 52시간 근무제도인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 시행에 따라 4월부터 트럭 운전기사의 잔업시간이 연간 96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생기는 변화다.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당장 4월부터 일본 전체 화물의 14%가 멈출 전망이다. 2030년에는 전체 물류의 34%가 멈추게 된다. 물류 2024년 문제의 타격을 가장 먼저, 크게 받는 분야가 농수산물이다. 4월부터 일본 농수산물의 30% 이상이 발이 묶일 전망이다.
'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지금까지 규슈 후쿠오카에서 생산된 딸기는 이틀 만에 도쿄와 수도권 지역의 슈퍼마켓 진열대에 올랐다. 운전기사 한 명이 차박을 해가며 규슈와 도쿄를 오간 덕분이다.

운전기사가 하루 15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는 4월부터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딸기를 보내려면 사흘이 걸린다. 하루 차이지만 딸기 맛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차이다. 후쿠오카에서 생산되는 딸기의 절반은 수도권에서 팔린다.
'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JA전농후쿠렌(한국의 '농협 후쿠오카')은 페리와 트럭을 조합해 지금처럼 이틀 만에 딸기를 운송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하지만 이 조합은 비용이 20~30% 더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는 딴 지 이틀 된 딸기를 1095엔에 먹을지, 사흘된 딸기를 842엔에 먹을지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빠르지만 비싸거나 저렴하지만 느린 서비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만 해도 다행이다. 느린데 비싸기까지 하거나 아예 서비스 자체가 없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2020년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서 영국은 극심한 운전기사 부족 사태를 겪었다. EU 출신의 외국인 기사가 급감한 탓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자 영국의 슈퍼마켓에서는 일시적으로 신선식품이 사라졌다. 유럽의 농수산물을 영국으로 실어나를 트럭이 부족해서다.

'물류 2024년 문제'는 먹거리에 국한되는 재난이 아니다.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가 2000년 제작한 '4월 이야기'는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홋카이도에서 상경한 여학생의 새 학기를 그린 영화다. 제목이 4월 이야기인 이유는 3월이 새학기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4월이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이어서다.
'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학교 뿐 아니라 경제활동도 4월부터 새해가 시작된다. 4월부터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때문에 정부 부처와 기업의 전근과 전출 명령도 4월1일을 기준으로 내려진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이사철은 3월이다.

하지만 오는 4월부터 일본에서 '4월 이야기'는 있는 집만 누리는 특권이 될 수도 있다. 없는 집은 원치 않게 '2월 이야기'나 '1월 이야기'로 내몰릴 수 있다. 운전기사 부족으로 3월의 이사 수요가 버거워져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사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자만 3월에 이사' 이런 황당한 일이…떨고 있는 일본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일본의 수학여행 시즌은 봄인 5~6월과 가을인 9~11월이다. 하지만 어떤 학교들은 여름이나 겨울에 수학여행을 가야할 지도 모른다. 운전기사 부족으로 관광버스가 제 때 운행하기 어려워져서다. 수학 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오키나와는 수학여행 시즌에 1200대 분의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감소의 역습…'물류 2024년 문제'⑭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