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에 담긴 메주.
소금물에 담긴 메주.
장은 한국 음식의 혼이다. 한국식 상차림이라 하면 으레 된장, 고추장, 간장을 활용한 음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에서 집집마다 토마토 소스를 만들어 두고 사용하는 것처럼, 한국인의 밥상에 장류는 늘 함께했다. 집집마다 메주를 띄우기 위한 메주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집에서 직접 장을 담가 먹는 사람이 많았다. 전통 메주는 종균을 사용하지 않고 마치 나그네처럼 메주방에 떠다니는 균주의 도움을 받았다. 자연 발효를 원칙으로 하니 마을에 열 집이 있다면 열 집의 된장 맛이 다 달랐다. 좋은 균이 없어질까 걱정돼 우리네 할머니들은 메주방을 청소하는 것조차 최소화했다.

집 앞 편의점만 가도 쉽게 된장 한 팩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과거 장 담그기는 집안의 연례행사였다. 정월 추운 날에 콩을 쪄서 만든 메주를 귀하디귀한 소금물에 담그고 수개월을 기다렸다. 장이 잘 익기를 바라며 액을 막아주는 금줄도 쳤다. 콩이 된장이 될 때까지의 여정을 쫓아가봤다.

100년 장맛의 비결을 따라서

메주를 만들기 위해 콩을 불리고 찌는 모습.
메주를 만들기 위해 콩을 불리고 찌는 모습.
우리나라 유일 된장 명인을 찾기 위해 지난달 23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을 찾았다. 이날 CJ제일제당의 한식 요리사 후원 프로그램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조리 전공 학생들과 강레오, 홍신애 셰프의 여정을 동행했다. CJ제일제당은 한식의 글로벌 확산을 돕기 위해 유망한 젊은 한식 셰프들을 발굴 및 육성하는 ‘퀴진케이’ 프로젝트를 올해 개시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명인 본인에 이르기까지 초계 변씨 된장 100년 역사가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78호 조정숙 명인의 손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가 쌓은 40년의 장 경력은 딸 변수정 전수자가 이어받고 있다.

장의 재료는 간단하다. 콩(메주), 소금, 물이면 된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다. 주재료가 정성과 기다림이다. 장을 담그려면 메주를 만드는 것이 우선. 가마솥에 대두를 푹 삶은 뒤 물러진 콩을 절구에 넣고 찧는다. 콩이 반죽처럼 잘 찧어지면 직육면체 모양으로 메주를 만든다. 이때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치대는 작업이 중요하다. 옛 어른들은 공기를 빼기 위해 메주틀에 콩 반죽을 채워넣고 버선발로 밟기도 했다.

직육면체의 메주를 열두 시간 말린 뒤 발효실에서 20일간 발효시킨다. 메주 사이사이에 볏짚을 넣고 15일간 띄우면 장류 제조용 메주가 만들어진다. 메주를 띄운다는 것은 메주에 곰팡이를 피우는 작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기초 재료인 메주가 만들어졌으면 이제 항아리에 넣을 차례. 장을 담그는 사람들에게는 항아리도 재산 중 하나다. 장이 잘 발효되도록 숨구멍이 돼주기도 하고, 비나 벌레로부터 장을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도 한다. 항아리 내부를 짚불을 피운 열기로 소독하고 한 김 식혀주면 장 담글 준비는 끝났다.

항아리에 메주를 넣은 뒤에는 소금물을 붓는다. 소금 5㎏을 체에 밭치고 위에 물을 부어가며 항아리 속으로 소금물을 내린다. 소금 5㎏에 물 20L를 준비하면 염도가 딱 알맞다. 여름에는 기온이 높아 소금이 빨리 녹으니 6㎏을 준비하는 것을 권한다.

조 명인의 비밀은 마지막에 넣는 씨간장에 있다. 씨간장은 오래 묵힌 진간장 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간장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온 간장을 뜻한다. 조 명인도 시어머니대부터 내려온 씨간장을 갖고 있다. 씨간장을 넣으면 언제나 균일한 품질의 된장을 만들 수 있다. 풍미를 위해 대추, 고추를 넣고 소독을 위해 불에 달군 참숯을 넣어 마무리하면 전반부는 끝난다.

“미식의 출발은 원재료를 아는 것”

멘토로 나선 강레오 셰프가 조리학과 학생과 함께 메주를 빚고 있다.
멘토로 나선 강레오 셰프가 조리학과 학생과 함께 메주를 빚고 있다.
항아리 뚜껑을 덮었다면 소정의 의식을 치를 차례.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금줄을 달아야 한다. 새끼줄에 숯, 고추, 소나무를 끼워 항아리 주위에 둘러준다. 여기에 버선을 거꾸로 매달아 벌레가 항아리가 아니라 버선 안으로 들어가게끔 장치를 만들어둔다. 이후 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60일 동안 숙성시키면 된다.

60일의 기다림 이후 된장과 간장을 맛볼 수 있다. 메주를 항아리에서 건져 메줏가루, 간장 소량을 섞어 질척하게 만들면 우리가 아는 된장의 형태가 된다. 바로 먹어도 되지만 보통 1년 반을 또 숙성시킨다. 메주 건더기를 건져내고 항아리에 남은 소금물은 간장의 원형이다. 여과해서 간장으로 사용하면 된다. 1년 이상 숙성한 간장은 ‘청장’이라 해 나물, 국, 찌개에 쓰고 5년 이상 숙성한 ‘진장’은 조림이나 무침에 사용한다.

정성이 담긴 원재료는 맛있는 음식으로 탄생한다. 예비 요리사들의 멘토로 나선 스타 셰프 강레오 씨는 “맛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은 음식에 담긴 스토리를 더 궁금해한다”며 “요리 기술을 연마하는 것뿐만 아니라 원재료를 발굴하고 그 재료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둬야 한다”고 했다.

조 명인 또한 된장의 활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요리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청국장 드레싱, 된장 캐러멜, 쿠키 등을 개발했다. 조 명인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가 점차 줄어드는 장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연구하는 것이 나와 셰프들의 몫”이라고 밝혔다.

청주=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