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서 유행한 AI 졸업사진(yearbook)처럼 우리 삶 속에 AI(Artific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깊이 스며들어 있다. 창작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미술에서도 AI가 활용된 작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22년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알렌이 AI 그림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해 만든 그림이 콜로라도 주 페어에서 1등을 한 일은 큰 충격을 주었고, 뉴욕 모마(MoMA)에서 전시되어 화제가 된 <Unsupervised>는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이(Refik Anadol) 만든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모델을 통해 미술관 소장품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대와 세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인 아티스트가 현재 진행형의 관심사인 AI의 영향을 탐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베를린에서도 AI와 예술, 그리고 우리 삶 간의 상호적 관계를 살피는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예술과 과학, 테크놀로지에 주목하는 전시 및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LAS 아트 재단에서 개최한 로렌스 렉(Lawrence Lek)의 개인전 《NOX》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이지만 런던에서 거주하는 아티스트 로렌스 렉은 필름, 설치, 게임, 사운드 등 멀티 미디어를 활용해 사변적 픽션(speculative fiction)을 바탕으로 구축한 가상 세계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작업을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건축협회(AA)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런던 왕립예술학교에서 머신러닝 분야 박사를 취득한 그의 배경을 드러내듯 렉이 구축한 허구의 세계는 건축적이고 공간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NOX》 역시 그러한 공감각적이고 건축적인 경험이 두드러진 전시이다.
《NOX》의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Photo by Hyunjoo Byeon.
《NOX》의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Photo by Hyunjoo Byeon.
스마트 시스템과 기계가 지배하는 가상의 미래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자동주행 차량 캐릭터들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NOX(비인간 우수성(Nonhuman Excellence)의 줄임말)라는 센터에 소환되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 전시는 베를린 남서쪽 지역의 쇼핑몰 크란즐러 에크의 비어 있는 3개층에서 펼쳐진다. 관객은 자신의 위치에 반응하며 캐릭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헤드폰을 끼고, 마치 인간은 사라진 미래인듯 보이도록 영상, 설치, 사운드 등과 함께 연출된 공간을 탐험하며 AI가 주체로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들을 따라가게 된다.
《NOX》의 가이드 헤드셋과 리모트 컨트롤. Photo by Hyunjoo Byeon.
《NOX》의 가이드 헤드셋과 리모트 컨트롤. Photo by Hyunjoo Byeon.
《NOX》의 전시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NOX》의 전시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NOX》의 전시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NOX》의 전시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수많은 몰입형(immersive) 작품이나 미디어 전시가 관객을 체험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로렌스 렉은 가상 세계에 관객이 완전히 몰입되게 하기보다 현실을 기반으로, 현실과 교차하면서 그가 구축한 사변적 세계를 경험하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연극적 무대처럼 연출된 공간에서 공감각적 경험을 하지만, 현실에서 발을 딛고 수많은 가능한 세계 중 하나를 살펴보며 우리의 삶과 현실을 지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렉이 현실과 AI가 만든 이미지 및 정보의 구분이 어려워지는 오늘날 예술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방식인듯 하다.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또 다른 AI 프로젝트로 그로피우스 바우(Gropius Bau)에서 열리는 《Ether’s Bloom: A Program on Artificial Intelligence》를 볼 수 있다. 베를린의 대표적 동시대 미술관 중 하나인 그로피우스 바우는 지난 8월, AI 사용이 급증하는 시대를 반영하며 AI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두려움은 물론 예술과 테크놀로지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시와 강연, 팟캐스트, 그리고 2024년 개시할 App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자가학습(self-learning)하는 테크놀로지를 예술의 도구 혹은 간과된 현실을 재조명할 수 있는 장치로 사용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AI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우리는 AI의 역할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에 대해 질문한다.
《Ether’s Bloom》의 프로그램 중 일부로 열린 강연. Photo by Hyunjoo Byeon.
《Ether’s Bloom》의 프로그램 중 일부로 열린 강연. Photo by Hyunjoo Byeon.
《Ether’s Bloom》의 프로그램 중 한 강연에서는 AI의 구조적 문제가 논의되었다. 일례로, 사회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밀라그로스 미첼리(Dr. Milagros Miceli)는 챗GPT의 자가학습을 위한 데이터 입력 및 가공은 시간 당 2달러에 일한 케냐 노동자들의 작업에 빚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리 시대의 자본 및 노동의 폐해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이 외에도 테크놀로지를 통한 공존의 방식을 탐색하는 전시 작품도 있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듀오 케네디+스완(kennedy+swan)은 'Mixed Signals'(2023)에서 인간이 식물 및 동물, 그리고 테크놀로지까지를 포함하는 비인간과 공존하는 삶에 AI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질문한다. 만약 AI가 우리에게 자연의 언어를 해석해 알려줘 자연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흔히 AI를 자연과 상관 없는 테크놀로지의 상징이라 여기는 고정관념을 비틀며 AI를 통해 비인간을 이해하려 시도하는 이 작품은 화려한 미디어 작업 대신 수작업으로 만든 수채화 18점과 AR(augmented reality)로 연결해 볼 수 있는 3D 이미지로 구성되어, 벽에 걸린 수채화를 모바일 APP으로 촬영하면, 아티스트 듀오가 손으로 만든 미니어처나 조각을 AR로 전환한 이미지를 수채화 위에 또 다른 겹으로 펼쳐 식물 및 동물 등이 지닌 고유의 소통 형태를 보여준다.
<Mixed Signals>를 위한 모바일 App의 스크린 캡처.
를 위한 모바일 App의 스크린 캡처.
우리를 현혹시키는 AI가 만든 이미지나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미술 맥락에서의 AI 작업은 그럴듯한 시각적,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AI를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찰을 촉구하는듯 보인다. 스스로 학습하는 AI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려한 현상의 너머에는 구조적, 윤리적 문제가 깊숙하게 얽혀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을 딛고 서서 아티스트의 눈을 빌려 테크놀로지로써 더 나아진 세상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