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년의 미래 설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독거 야생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파와 삼시세끼 밥 나오는 실버타운파다. ‘파’는 조직폭력 세계 외엔 요즘 잘 안 쓰는 듯한데 카르텔로 바꿔도 상관없다. 이 분석은 철저히 나의 주관성에 기초하지만, 대체로 남자는 산이나 시골 폐가에서 물고기 잡고 버섯 캐서 살겠다는 자연인파가 많고, 여자는 혼자 살든 둘이 살든 밥 짓기에서 해방되는 실버타운을 선호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미래 설계라기보다 마음 속 깊이 희망하는 꿈에 가까운 것이다. 천국, 낙원이 종교적인 개념어라면, 그것을 한 문장으로 바꾸면 “나 시골 가서 전원생활 할래.” “밥 주고 청소 해주는 실버 아파트에 갈래.”가 되겠다.
The Cabin at Saint-Adresse, 클로드 모네, 1867 (출처: 위키아트)
The Cabin at Saint-Adresse, 클로드 모네, 1867 (출처: 위키아트)
<초보 노인입니다>의 저자는 교직 생활을 은퇴하며, 삼시세끼 밥을 제공하는 구내식당이 있고 집값도 적절해 보이는 실버 아파트를 큰 고민 없이 매입한다. 예순다섯이지만 버스에서 누가 자리를 비켜주면 민망해서 화를 불쑥 낼 정도로 아직은 노인으로 살아갈 마음의 준비는 안 되어 있었다.

“아유, 한창인데 여길 빨리 들어오셨네. 이제 60이나 되셨나?”

자세가 상당히 곧고 옅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는 8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펌을 한 은갈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밝은 핑크빛의 두피가 살짝살짝 드러났다.

실버 아파트이니 당연히 앞집, 옆집, 뒷집도 모두 일흔, 여든 넘은 노인들이 산다. 자칭 ‘초보 노인’인 저자는 드디어 삼시세끼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평소 느슨한 타입의 남편을 뒤치다꺼리 할 일도 사라졌다. 기쁘기만 해야 할 텐데, 어째 기분이 개운치 않다. 이웃들이 자신의 일이십년 뒤 쇠약해진 자화상이라 해야 할까, 기력이 쇠한 노인들 속에 영 어울리지 못하는 예민한 자신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한다.

물론 거기서도 입구 앞 화단을 가꾸며 즐거워하는 노인들도 있다. 그러나 저자 김순옥 님은 솔직하게 토로한다.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가고, 내 노동을 쏟을 일이란 없고, 하루하루가 너무 고요한 그곳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았다고. 결국 2년 남짓에 조금 손해를 보고 실버 아파트를 처분한 뒤 친구들이 있는 복잡한 도시로 나왔다.
출처: 『초보 노인입니다』 표지
출처: 『초보 노인입니다』 표지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 본업을 성공리에 마무리 짓고, 정년퇴직 후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물론 나 역시 사십대 후반의 편집자에 언제고 일을 놓아도 별로 이상할 일이 없을 나이에 이르렀다. 그 자리에서 내가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는 게 요즘 직장 현실에서 기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는데, 한편으로는 정년까지 일을 잘 마치신 그분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하면서도, 영 섞어들어지지 않았다.

무엇이었을까? 다 때가 있는 걸까? 내 몸이 좋지 않을 때는 ‘건강한 컨디션을 위한 하루 30분 홈트’도 전혀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몇 달 전 다시 시작해 너무 즐기며 해오던 수영도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쇠약해져 누가 차려주는 밥의 효용이 독립적인 삶의 가치보다 크게 느껴질 때도 찾아오겠지만, 그전까지는 번거롭고 복잡하고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조금 피로하고 남들과 얽힌 삶이 그럭저럭 지낼 만한 건지 모른다.

“자연인 될래.” “실버 아파트 간다.”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나 지금 힘들어” “숨고 싶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일. 섣불리 실행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고양이인 옆집 고양이들처럼 살아보자. 밥을 챙겨주지 않고 예뻐해 주고 가끔 간식만 주면 된다. 어느 날, 초코와 늘 함께 놀던 우유가 혼자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옆집 사람인 나와 잘도 논다. “우유야, 초코 어디 갔어?” 그제야 초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집 곳곳을 뛰어다니는 우유. 그렇게 우리 인간들도 고양이처럼 너무 앞서가며 먼 미래를 생각하진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