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4분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가정용과 소상공인용(업소용) 요금은 동결하거나, 인상하더라도 그 폭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가계와 소상공인 부담은 거의 늘리지 않는 대신 기업 요금만 올리겠다는 것인데,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당정의 ‘꼼수 인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내년 1분기는 총선을 목전에 둔 시기다. 그때 가서 가정용, 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을 올리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산업용 중심으로 요금을 또 인상할 수 있다. 산업계에선 “고유가·고물가·고금리로 고통받기는 마찬가지인데, 결국 기업들만 봉인가”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3분기 요금을 동결한 당정으로선 이번엔 요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0조원이 넘는 부채에 47조원의 누적 적자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의 재무 위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해법으로 검토한다는 게 산업용 요금 인상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제는 광업·제조업 및 기타 산업에 전력을 사용하는 고객으로서 계약 전력 300㎾(킬로와트) 이상에 적용된다. 수요자는 대부분 기업으로, 전체 전력 판매량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달한다. 이 요금만 인상해도 한전 재무구조가 일부 개선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당정의 판단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사실상 정부 보조금에 해당한다며 한국산 철강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판정을 내린 것도 명분이 되고 있다. 값싼 전기요금이 통상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정은 이런 땜질식 요금 결정보다는 ‘요금의 정치화’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2021년 1월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분기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정치 논리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독립적 위원회를 실질 가동해 천재지변 등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연료비 변동 폭을 일정 범위 내에서 무조건 자동 반영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계, 기업 등 전력 소비자의 요금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전력시장 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 과제는 언제 이행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