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에 투자하는 VC, 그들은 어떤 혁신 겪고 있을까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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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 쿼타북(쿼타랩) 대표 기고
벤처시장에서 혁신을 찾아 키우는 벤처캐피털(VC)들. 이들은 밖에서 보이는 투자 활동 이외에 포트폴리오 관리, 펀드 결성, 출자자 보고 등 수많은 업무를 합니다. VC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별화 전략과 스스로를 혁신하는 과정도 필요하죠. 국내외 40조원 규모의 비상장주식을 관리하는 '쿼타북' 운영사인 쿼타랩의 최동현 대표가 한경 긱스(Geeks)에 'VC 스스로의 혁신'에 대한 기고를 전해왔습니다.
스타트업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전선에서 혁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혁신가들에게 투자하는 VC 또한 이에 맞춰 스스로도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과거에는 VC의 역할이 주로 사업을 위한 자금적인 지원이었다면, 이제는 자금 외의 리소스적인 지원으로도 확장되었고, 이러한 역할까지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 또한 많아졌다. 창업자가 투자금 규모는 더 적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은 더 될 수 있는 투자자를 선택했다는 사례는 이제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VC 입장에서는 투자검토나 사후관리 대상의 스타트업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이를 위한 펀드 또한 계속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딜과 좋은 출자자를 놓치지 않기 위한 고민은 늘 하게 된다. 특히나 VC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전략은 점차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커져 나가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VC 또한 스스로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탄생하게 된다.
Operation-Wise: 더 큰 성공을 위해 진화한 투자 전략
“가장 빠르고 크게 성장할 회사를 가장 초기에 투자하는 것"이 벤처 투자의 대박 공식이라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 내 스타트업 공정가치평가 분석 자료를 보면, 매 투자 유치 시 주당단가가 평균적으로 2~3배 오른 것에 비해, 시드 라운드 직후의 투자는 주당단가가 4배 오를 정도로 초기에 기업가치가 가장 많이 오른다. 최근 몇 년간 초기 투자가 본업이 아니었던 투자자들 조차 직접 초기 투자를 시도하거나 고려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먼저 초기에 투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비즈니스의 태생부터도 투자자가 함께할 방법을 연구하게 만들어서, 아예 투자자가 공동 창업 수준의 시점까지도 내려가는 시도들이 나오게 된다. 아래의 방식들은 오늘날 더는 생소하진 않으나, 처음 시도되었던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운용 전략들이었다:▷Incubator: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리소스나 환경적인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법으로 시도
▷Accelerator: 기업의 초기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묶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법으로 시도
▷Venture Studio: 아예 기업을 같이 설립한 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방법으로 시도
▷Micro VC: 규모가 작은 펀드를 통해 초기 소액 투자를 뿌리는 방법으로 운용 차별화를 시도
▷Scout Program: 운용사의 이름을 빌려준 개인을 비밀리에 파견하여 딜을 소싱하는 방법으로 시도
▷기타: 기존 운용사가 초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사를 인수하거나, 이들의 펀드에 출자하여 간접적인 초기 투자를 집행
대표적으로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2005년 설립),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 ·2007년 설립) 등이 위 방식을 정형화한 이후, 미국 내에서만 이제 2,000개 이상의 엑셀러레이터 및 인큐베이터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스카우트 프로그램 전략도 이제는 흔하다. 필자 또한 여러 운용사의 스카우트들을 만나본 바 있다. 방식에 따라 이름은 다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가장 초기에 투자할 기회를 최대한 만들고자 한 니즈에서 모두 동일하게 시작하였다.
초기에 투자를 잘했던 기업이라도, 성장 못 하는 기업이 되면 실패한 투자가 된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른 성장을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또한 항상 업계 내의 주요 과제다. 이를 해결하고자 스타트업 외부에서의 수동적이거나 제한적인 역할을 벗어나, 마치 스타트업 내부 사람인 양 훨씬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전략들이 나오게 된다. 투자자가 스타트업과 함께 “문제를 같이 푸는 동반자"가 되는 것은 스타트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높은 성공 확률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대외적인 브랜딩에도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운용사는 스타트업을 도울 수 있는 오퍼레이터 (Operator, 사업 관련 실무를 이행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 들을 사내로 채용하고, 이러한 역량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새로운 VC 유형 중 하나로 떠오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a16z의 팀 구성을 보면, 스타트업의 운영/기술/세일즈/마케팅 등 다양한 실무를 도울 수 있는 오퍼레이터만 수십 명이 존재한다. 와이콤비네이터 또한 창업가 출신들을 그룹 파트너로 데려와서 이들이 프로그램의 일원이 되도록 구성한다. 필자가 만나본 세콰이어의 내부 팀 중 하나는 투자에 일절 관여 하지 않고, 포트폴리오사가 직면하는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만을 업무로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들은 리더십 채용이나 기술 부채의 청산 등 회사의 빠른 성장을 위한 솔루션을 다양하게 찾고 지원한다. 필자는 투자사가 포트폴리오사의 요청 기반으로 시장 분석 리포트를 직접 작성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경우까지도 본 바 있다.
VC의 오퍼레이터 팀이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규모는 이를 소화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수나 상황에 기반을 두기에, 이러한 전략은 스타트업 시장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로, 최근에는 시장 전체적으로 고용이 감소하면서, 세콰이어도 채용을 지원하는 오퍼레이터 7명을 해고한 바 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오퍼레이터들은 주로 사업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깊을 뿐만 아니라, 사업의 스케일업을 큰 규모로 직접 해본 전문가들로 많이 이뤄진다. 이러한 오퍼레이터들의 효과가 인정받게 되면서, 이들이 스스로 투자자로 나서는 것도 최근 큰 흐름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필자가 만나본 한 마케팅 전문가는 수조 원짜리 회사의 VP 및 창업자로서 이력을 쌓은 후, 자신의 투자가 웬만한 마케터 채용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며, 이제는 전문적인 수퍼엔젤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필자가 만나본 싱가포르 XA Network도, 처음에는 동남아 구글 출신들의 커뮤니티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찍어본 창업가들을 선택적으로 초대하여, 이를 기반으로 수퍼 엔젤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투자 집행 및 사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VC 소속의 심사역 또한 오퍼레이터 출신들이 점점 주목받는 현상은 데이터로도 나타난 바 있다. 2023년 포브스 마이다스 리스트(Forbes Midas List 2023)의 탑 30명을 보면, 이들 중 73%가 창업을 해봤거나 현업에서 경험을 쌓아본 사람들이다. VC 자체의 역사 대비 명망 있는 오퍼레이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기회의 시기가 짧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 비율은 앞으로도 충분히 늘어날 여지가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엔젤투자자를 기관투자자 보다는 후순위의 옵션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벤처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는 한, 훌륭한 경력의 오퍼레이터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역할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기관 투자자의 브랜드 만큼이나 수퍼 엔젤의 브랜드 또한 강력해지는 미래가 조만간 도래할 것으로 필자는 예상한다.
Tech-Wise: 투자 또한 기술로 차별을 만들어가는 시대
VC는 밖에서 보이는 투자 활동 이외에 포트폴리오 사후관리, 펀드결성, 출자자보고 등 수많은 업무를 행한다. 테크크런치의 2016년도 설문에 의하면, VC들은 평균적으로 딜 발굴 및 투자에 36%, 투자한 회사의 사후관리에 33%, 기타 펀드 운용 및 네트워킹에 31%의 시간을 쓴다고 한다. 다른 여느 산업과 마찬가지로, VC 또한 사업이 잘될수록 일이 많아진다.하지만 벤처 시장 크기의 변화에 비해, 펀드 운용 인력 규모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커왔다. 국내만 해도 운용 중인 펀드 규모가 ‘19 Q3 당시 25.8조 원에서 ‘23 Q3 현재 54.6조 원으로 2.1배 늘어나는 동안, 운용 인력은 1,800명에서 2,800명으로 1.5배만 늘었다. 여기에 집계되지 않은 CVC 나 개인투자조합 시장의 성장성도 고려하면, 자금 유입 속도가 운용 인력 양성 속도보다 훨씬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람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서는 업무의 자동화나 효율화를 돕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지게 된다.
과거에는 VC 도 일반 IT 회사에서 썼을 법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였지만, 갈수록 복잡해지고 특수해지는 VC 업무에 맞춰 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찾는 경향이 굉장히 강해지고 있다. 따로 VC Software Stack이라는 영역으로 불릴 정도로, 투자 및 펀드 업무와 관련한 소프트웨어 수는 글로벌하게 400개 이상이 집계된다고 한다.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 스스로의 경쟁력을 위한 소프트웨어의 적극적인 도입은 이제 필수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백오피스 ERP 툴을 사용하지 않는 VC는 이제 보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투자와 관련된 업무가 굉장히 방대한 만큼, 아직도 소프트웨어가 닿지 못한 영역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한 일환에서 쿼타북은 투자 이후뿐만 아니라 투자 이전까지도 관리가 가능한 딜 관리 CRM 기능을 출시한 바 있다. 앞으로도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는 한, 쿼타북은 투자 영역의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지속해서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최동현 쿼타북(쿼타랩) 대표 △ 카네기멜론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 학사 및 석사 졸업
△ 전 이커머스 및 결제 플랫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VC 투자 심사역
△ 포브스 코리아 선정 '2030 파워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