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초안서 '文정부 비판' 부분 삭제 지시…몸 낮춘 채 '부탁' 5번·'감사' 4번
野의원 일부 호응 안해도 악수 계속…서민·취약층 위한 초당적 민생대책 당부
'건전재정' 의지 밝힌 尹, 野에 다가서며 '거국협력' 호소(종합)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절감한 재원으로는 서민·취약 계층 지원과 국방·치안·치수와 같은 국가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중점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면서 지난해 시정연설과 달리 전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민생'과 '물가안정'에도 초점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대내외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진단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 고금리와 고물가 지속 ▲ 세계교역의 0%대 증가율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로 인한 안보 리스크 등 위기 요인을 열거하며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거시경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 때 서민 계층의 어려움이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 범정부 물가안정 체계 가동, 취약계층의 필수 생계비 부담 경감을 비롯해 다양한 민생 안정 대책을 펴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서민금융 공급 확대를 통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 완화 노력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실 참모진의 현장 보고 내용을 소개하며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이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 데 이어 고금리 장기화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현 정부 들어 역점을 두고 추진한 개혁 성과와 추진 상황을 소개했다.

아울러 "저출산이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려면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제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주요 개혁 방안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민생 안정과 복지 지출 등에 투입할 재원 마련을 위해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은 대내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대외적으로는 국가신인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의 건전재정 기조를 '옳은 방향'이라고 호평했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많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포퓰리즘(인기 영합) 정책 요구에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 '부탁드린다' 5차례 언급…국회에 예산안 협조 요청
윤 대통령은 27분간 시정연설에서 경제(23회)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정부(22회), 국민(22회), 지원(16회), 국가(16회), 예산(15회), 개혁(14회), 재정(13회), 분야(11회), 미래(11회), 교육(11회), 확대(10회), 국회(10회) 등이 뒤를 이었다.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인 만큼 '경제' '예산' '재정' 등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한 것이다.

또 여소야대의 지형 속에서 여당만으로는 예산 통과가 불가능한 만큼 '국회', '협력', '협조'도 각각 10회, 8회, 5회 언급하며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부탁드린다"는 표현도 5차례 등장했으며 '감사'도 4차례 사용했다.

윤 대통령은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금융, 세제 지원을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힘써왔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준 국회의 관심과 협조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교권 보호 4법의 개정에 협조해주신 국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라고도 했다.

연설을 마무리하면서도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이 차질 없이 집행돼 민생의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며 국회를 향해 몸을 낮췄다.

윤 대통령이 일부 야당 의원들이 호응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악수를 계속 이어간 것도 이러한 연설 내용과 맞닿아 있다는 게 대통령실 참모진 해석이다.

◇ 당일 새벽까지 원고 수정…'前정부 겨냥' 초안 수정 지시
윤 대통령은 8천143자에 달하는 시정연설 원고를 계속 손수 고쳤고 이날 새벽에야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특히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비판이 담긴 초안 내용에 대해 수정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초안에는 말뿐인 복지, 무너진 재정, 카르텔로 낭비된 혈세 등의 언급이 있었다"며 "대통령이 직접 빼라고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자주 언급했던 '가짜평화' 관련 부분도 기사 수정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연설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건전 재정' 기조를 설명하며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됐다"고 지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