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내한…슬로우모션·인형극 등 이색 연출
인물의 감정 드러내는 직관적 안무…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밑에서 줄리엣을 바라보던 로미오는 가슴이 터질 듯한 설렘에 다리를 동동 구르고, 바닥을 데구루루 구른다.

줄리엣의 마음도 자신을 향해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손끝으로 줄리엣의 몸을 쓸어올리며 환희에 빠진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대발레는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깼다.

'현대발레의 거장'으로 불리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예술감독 장크리스토프 마요는 직관적인 표현으로 무용수들의 강렬한 감정을 끌어냈다.

마요는 클래식 발레에서 사랑, 맹세, 결혼 등을 상징하는 마임을 일체 배제하고 누가 봐도 인물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안무로 작품을 채웠다.

그중에서도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로미오의 안무와 연기가 탁월했다.

로미오는 손으로 턱을 바치고 바닥에 누워 발코니에 나온 줄리엣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년처럼 두 다리를 교차하며 바닥을 쿵쿵 쳤다.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풍선처럼 가벼운 점프에는 수줍음과 설렘이 가득했다.

사촌 티볼트를 죽인 로미오를 마주한 줄리엣은 절망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사랑을 애절하게 연기했다.

줄리엣은 다가가고 싶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듯 로미오와 가까워지면 한발짝 멀어지는 춤으로 관객들을 애태웠다.

결국 로미오의 품에 쓰러지듯 안긴 줄리엣은 한 없이 슬퍼 보였다.

인물의 감정 드러내는 직관적 안무…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두 주인공 외에도 줄리엣을 패리스 백작과 결혼시키려는 줄리엣의 어머니는 관능적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안무로 단호함이 느껴지는 연기를 펼쳤다.

줄리엣의 유모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허둥대면서 재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총 3막의 시작을 열 때마다 등장하는 고뇌에 찬 로렌스 신부는 작품의 길잡이처럼 앞으로 펼쳐질 파국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세계 정상급 컨템퍼러리 발레단으로 꼽히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실력은 한눈에 봐도 뛰어났다.

하지만 무용수가 회전을 몇 번 하는지, 얼마나 높이 뛰는지 등 기술의 화려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들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랑 고백이, 화합이, 절규가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했다.

이는 마요 감독의 연출 의도와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는 앞선 인터뷰에서 "안무가 '보여주기 위한 예술'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애쓴다"며 "관객이 시대를 초월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감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극의 흐름 속에서 관객들의 몰입도를 확 끌어올리는 마요 감독의 연출도 돋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문이 싸우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린 동작으로 표현됐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마치 예고하듯이 극 중간 인형극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여준 연출도 특색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