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금 후원도 끊어야" 목소리…우크라전 이후 중립국 논란 거듭
[특파원 시선] 스위스, 하마스 테러단체 결국 지정…중립국 논란은 여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보복공격에 나서는 등 양측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자 스위스가 또 한 번 중립국 지위를 놓고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어느 쪽의 편에도 서지 않는 태도를 버릴 때가 됐다는 서방국가들의 압력을 받아온 스위스가 이번에는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스위스는 일단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연방정부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장관 회의체인 연방평의회는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스위스는 이번 무력 충돌 발생 후 하마스의 공격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억류된 인질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유럽연합(EU) 등과 달리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하지는 않은 점이 논란이 됐다.

스위스·이스라엘 의회 협의체는 성명을 통해 "지금의 입장을 재고할 기회가 왔다"며 "스위스가 하마스와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할 때"라고 연방정부를 압박했다.

우파 성향의 스위스 자유당도 연방정부에 하마스의 테러단체 지정을 요구했다.

스위스 내 유대인 단체인 '스위스 자유 유대인 플랫폼'도 "테러단체로 지정하지 않으면 하마스는 스위스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기부금을 모으고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스위스의 외교 방향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같은 요구가 이어지자 연방평의회는 그간의 외교 방침을 바꿔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기로 했다.

테러단체 지정에 필요한 법률적 검토 등은 연방평의회 산하 중동 태스크포스(TF)가 맡도록 했다.

TF의 검토가 마무리되고 연방평의회가 최종 확인하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처럼 스위스가 지정한 테러단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치권의 요구는 테러단체 지정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가 팔레스타인에 제공하는 인도주의 후원금 문제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와 현지 비정부기구(NGO)에 연간 2천만 스위스프랑(297억여원)을 지원하는데, 이 돈이 테러 자금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당장 스위스에서 의석수가 가장 많은 국민당부터 지난 10일 "하마스와 연계된 팔레스타인 단체에 대한 모든 지원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금까지 스위스가 후원한 자금이 하마스 및 관련 단체에 지원된 사례는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연방의회에서는 명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논란을 겪는 상황이다.

스위스는 서방국가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립국 원칙을 내세워 자국산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반입되는 것을 막고 있고,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도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서방국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나왔다.

중립국 논란은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으며 국제사회의 비난이 잇따른 분쟁 당사국이나 분쟁 세력을 중립국이라는 이유로 가만히 둘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와 관련이 깊다.

이런 주장이 고조되면 스위스는 어느 쪽을 편들지 않는 균형 잡힌 위치에 서 있어야 국제 평화에 기여하면서 국익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특정 국가나 단체에 대한 제재를 국제사회가 합의했다면 이를 따를 것이며, 그런다고 중립성 원칙이 깨지지도 않는다는 설명도 해왔다.

그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점에 비춰 스위스는 실질적인 외교 성과를 보여줘야 할 거라는 진단이 나온다.

가령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협상 채널 역할을 맡아 긴장 해소를 유도하는 등 구체적인 기여도를 보여준다면 중립국의 역할을 재확인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