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와 15년간 알몸 밀회"…美 뒤흔든 '스캔들' 전말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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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와이어스(1917~2009)
美 '국민 화가' 된 그의 뒤에는
아내 벳시의 사랑이 있었다
두 사람의 '마술적 사실주의'
美 '국민 화가' 된 그의 뒤에는
아내 벳시의 사랑이 있었다
두 사람의 '마술적 사실주의'
죽음 같은 적막이 방안을 채웠습니다. ‘뭔 소리야.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 그림들은 대체….’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은 말이 되지 못해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미칠 듯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참을 웃던 그녀. 눈에 눈물이 맺힌 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1986년 미국 전역을 뒤흔든 ‘헬가 스캔들’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주인공은 미국의 국민 화가 앤드류 와이어스(1917~2009)와 그의 아내 벳시 와이어스(1921~2020). 오늘은 이 부부의 삶과 그림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아내에게로
5남매 중 그림 재능이 가장 탁월했던 아이가 막내아들인 앤드류였습니다. 아버지는 앤드류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몸이 약해 걱정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직접 ‘밀착형 영재 교육’을 시켜 순수미술 화가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앤드류에게 그림 기술을 자세히 가르쳐주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미술이 무엇이고 자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근본적인 가르침을 줬습니다. “빛과 자연을 사랑하라”는 게 아버지의 입버릇이었습니다. 이는 앤드류의 작품세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체계적인 영재 교육이 만났으니 앤드류가 20대의 젊은 나이로 미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앤드류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1939년 여름 휴가지에서 만난 평생의 반려자 벳시였습니다. 당시 앤드류는 스물두 살이고 벳시는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벳시는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앤드류를 결정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한 건 벳시의 외모가 아니라 ‘안목’이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던 앤드류가 “뭐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묻자, 벳시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템페라 그림을 가리켰거든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자신의 템페라 그림을 처음 만난 그녀가 인정해준 겁니다.
부부의 ‘환상의 호흡’
앤드류가 명배우였다면 벳시는 명감독이었습니다. 벳시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더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뛰어난 안목과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이었지요. 그녀는 남편의 작품 방향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림을 지나치게 자세히 그리는 남편에게 “다 그릴 필요 없다”고 조언한 게 대표적입니다. “해부학 그림 같아. 그런 종류의 화가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나는 그런 그림은 재미없더라. 카드(세부 사항)를 다 보여주지 말고 숨겨.” 앤드류는 곧바로 조언을 받아들였고, 덕분에 그의 그림은 더욱 신비로워졌습니다.
당시 미국 미술계의 주류는 추상미술이었습니다. 와이어스의 그림처럼 사실주의적인 작품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던 때였지요. 비평가들은 촌구석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그림을 그리는 데다 학맥도 없는 앤드류의 작품을 혹평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뉴욕현대미술관(MoMA) 관장은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봤고, 곧바로 이사회를 소집해 그림을 사서 미술관에 걸었습니다. 관장의 예상대로 작품은 관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와이어스의 명성은 가파르게 높아졌고, 작품값도 천정부지로 뛰었으며, 주요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앞다퉈 사들였습니다. 이는 앤드류를 ‘국민 화가’로 만들었습니다.
앤드류에게도 단호했습니다. 남편이 “작품을 좀 바꾸면 거액에 사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자 “그리기만 해봐라. 그럼 난 떠난다”고 화를 낸 적도 있었고요. 큰돈을 줄 테니 잡지 표지를 좀 그려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면 나를 다시 못 볼 줄 알아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모두 남편 작품의 가치와 예술세계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그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일상에서도 벳시의 역할은 빛났습니다. 앤드류는 주변의 평범한 풍경과 사람들을 영혼 깊숙이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시키는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극도로 예민해서 일상생활엔 좀 부적합한 성격이었지요. 앤드류는 아주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서툴렀습니다.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부탁조차 금세 잊어버리고 애가 우는데도 그림에 몰두하곤 했지요. 심지어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호숫가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아들이 익사할 뻔한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또 아니니 벳시는 속이 터졌겠지요. “어휴, 이 화상아!”
'비밀의 누드'본 벳시, 반응은
남편이 그리는 그림을 본 벳시의 첫마디는 이랬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여기까진 당연한데, 이어진 말이 의외였습니다. “사우나에 수건을 두르고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설마 이대로 그림을 완성할 건 아니지? 그릴 거면 제대로 벗은 모습으로 그려!” 와이어스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얘는 겨우 열네 살이라고. 애 아빠가 나를 총으로 쏠 거야.” 돌아온 답. “당신 배짱을 한 번 보겠어.”
어쩌겠습니까.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산탄총에 맞아도 할 말이 없겠어.’ 소녀와 부모에게 “누드를 그려도 되겠냐”고 물으면서 앤드류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녀와 부모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줬습니다. 아무리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해도 딸의 누드를 허락해준 걸 보니, 누가 봐도 앤드류가 허튼짓할 사람은 아니었나 봅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고 칩시다.
앤드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벳시에게도 지배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벳시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요. 새로운 영감을 얻어서 참신한 작업을 하려면 새로운 나만의 모험을 해야 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 같은 작품을 남겼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대충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한편 헬가도 모델이 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혼자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친구도 없고 고향이 그리워서 극도로 우울해져 있었거든요.
마침내 작품을 보게 된 벳시.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작품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바빴는데 어느 틈에 이런 작품들을 그렸어? 그림이 별로였으면 당신을 죽였을 거야.” 그리고 남편의 작품세계를 잘 아는 큐레이터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내 남편이 얼마나 새롭고 참신한 그림들을 그렸는지 얼른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헬가 연작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싸구려 치정극’, ‘관음증적 작품’이라는 비판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노이즈마케팅으로 그림값을 올리기 위해 앤드류 부부가 자작극을 벌였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습니다. 그럴 법도 했습니다. 15년간 남편에게 속은 아내치고는 벳시의 모습이 너무 평온해 보였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명감독과 명배우, 그 마술적 리얼리즘
“속상했냐고요? 당연하죠.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하지만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해서는 아니에요. 항상 다른 여자는 내 라이벌이 아니었어요. 남편을 놓고 경쟁해야 할 상대는 언제나 작품이었지요. 내가 화났던 건 ‘내가 앤드류의 작품을 위해 모든 걸 다 해줬는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중요한 작품활동에서 뺄 수 있냐’는 배신감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남편은 무슨 그림을 언제 그렸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걸 맞춰서 다시 기록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말을 증명하듯 1991년부터 헬가는 아예 앤드류의 집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간호사 겸 간병인이라는 새로운 역할로요. 벳시가 남편을 용서했듯, 헬가의 남편도 헬가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동생활은 앤드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부부가 모두 살아있을 때 함께한 인터뷰에서 벳시는 말했습니다. “우린 여전히 재미있어요. 배가 아플 때까지 웃었죠. 정말 멋진 인생이었어요! 슬픔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고, 웃음도 많았죠.”
2009년 앤드류가 눈을 감은 뒤 벳시는 남편의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를 정리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20년 벳시가 세상을 떠나면서 명감독과 명배우는 다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앤드류의 작품에는 쓸쓸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죽음과 신비, 비밀에 대해 탐닉하던 앤드류의 섬세하면서도 우울한 감성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품 안에 담긴 게 그뿐이었다면 앤드류의 그림은 지금처럼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이 모든 성공은 벳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둘 사이를 이어준 부부간의 깊은 믿음과 사랑이었습니다.
*이번 기사는 라이프지 기자인 리처드 메리먼이 수십년간에 걸친 화가 가족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집필한 평전 ‘Andrew Wyeth: A Secret Life’를 중심으로 앤드류의 책 ‘Wyeth at Kuerners’를 일부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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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3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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