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구부렸다 펴는 플리에…이 단순한 동작에 모든 게 달렸다
“10월은 봄이 시작되는 첫 달, 땅속 깊은 곳에서 싹이 트고 생장하는 달, 남몰래 싹눈이 여무는 달이다.”

카렐 차페크의 저서 <정원가의 열두 달>에 나오는 글이다. 정원가로 살았던 차페크에게 10월은 다음 해에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 식물이 땅속 깊은 곳에서 움트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발레에서 ‘봄’에 비유할 수 있는 숨어 있는 동작은 ‘플리에(pli·사진)’다. 플리에는 프랑스어로 ‘구부리다’ ‘접다’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무릎을 구부려서 내려갔다 올라가는 동작이다. 언뜻 듣기에는 아주 초보적인 동작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발레를 배울 때 제일 처음 접하고, 발레 클래스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수행하는 동작. 그래서 처음에는 플리에가 어렵다거나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레를 배울수록 깨닫게 된다. 플리에를 가장 처음 배우는 건 쉬운 동작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동작이기 때문이란 것을.

발레는 다른 춤과 달리 호흡을 위로 쓴다.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하늘로 향해 솟아오르는 춤이다. 인간의 날고 싶은 욕망이 반영됐다. 그런데 플리에는 하늘로 솟는 게 아니라 반대로 땅으로 내려가는 동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리에를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동작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플리에는 단순히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이 아니다. 우선 발과 무릎, 허벅지와 고관절이 바깥으로 향하는 턴아웃 자세가 기본. 등은 펴고, 어깨는 내리고, 갈비뼈를 닫아 배의 코어 근육을 단단히 잡고, 꼬리뼈는 아래로 향해 엉덩이가 뒤로 빠지지 않은 상태로 무릎을 구부려 밑으로 내려간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몸을 세워야 한다. 이 동작 하나에 이미 호흡, 근육, 자세 등 발레의 다른 동작을 잘 구사하고 익히기 위한 기본이 모두 농축돼 있다.

플리에는 아래로 향하는 모습이라 발레가 추구하는 천상을 향한 동작과는 정반대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땅으로 꺼지는 게 아니라 하늘로 향하기 위한 에너지가 응축되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용수철이 되는 동작이다. 하늘로 향해 풀쩍 뛰어오르는 발레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깊은 플리에가 필수다.

이단비 발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