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여행 아닌 여행기' 등 에세이집 풍성
'귀로 하는 독서' 오디오북도 장거리 이동시 좋은 선택

엿새나 되는 올 추석 연휴는 평소 분주한 일상에서 멀어졌던 책을 다시 손에 잡을 절호의 기회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도록 해줄 따스한 에세이들은 '독서의 계절' 가을이 시작된 지금이 제격일지 모른다.

연휴 기간에 읽을만한 에세이는 물론, 귀성과 여행길에 '귓속의 동반자'가 되어줄 오디오북도 소개한다.

긴 연휴, 가벼운 기분으로 잡은 책이 마음을 흔들지도
◇ 작가들이 전하는 따스한 손길…신작 에세이들 다채롭네
"창밖을 보니 날은 화창하고, 우연히 첫사랑의 집이 보이고, 옆에서는 준이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때 '행복의 전부가 여기 있네' 하고 생각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

"
'여행 아닌 여행기'는 어느덧 데뷔한 지 36년이 지나며 '고참' 작가가 된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산문집이다.

바나나는 소설집 '키친' 등으로 여러 문학상을 휩쓸고 대중적으로도 '하루키 현상'에 버금가는 '바나나 현상'이란 유행어를 낳은 인기 작가다.

산문집에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보듬으며 살아온 바나나의 겸허하고 소박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하고, 깊이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고, 여느 독자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 속에서 바나나는 깊고 아름다운 생의 반짝임과 행복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에세이집에 비친 바나나의 모습은 그가 마당에 심어놨다는 어성초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쓰임이 많은.
"(어성초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있으면서 풍성하고, 값도 비싸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너그럽다.

장미와 백합이 아니면 어때, 이런 꽃으로 살고 싶네 하고 생각했다.

" 민음사. 김난주 옮김. 368쪽.
긴 연휴, 가벼운 기분으로 잡은 책이 마음을 흔들지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말할 권리가 없다.

"
'사막아, 사슴아'는 '하나코는 없다', '회색 눈사람' 등의 소설을 쓴 저명한 작가이자 불문학자인 최윤이 오랜만에 펴낸 산문집이다.

작가는 첫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1994) 이후 30년 만에 에세이들을 묶어냈다.

소설가이자 교육자로, 또 진지한 문학 독자로서 세월을 밟아온 작가의 섬세한 목소리의 글 37편이 모였다.

특히 세계문학 독자라면 저자가 풀어내는 탁월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솔깃할 것 같다.

존 밴빌, 조르주 페렉, 응구기 와 티옹오, 오에 겐자부로, 알베르 카뮈, 톨스토이 등 최윤이 사랑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론이다.

26세 카뮈가 알제리에서 기자로 일할 때 산악지대 극빈촌 사람들에 관해 쓴 르포를 모은 책 '카빌리의 비참'에 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강조한 것은 분노, 참여, 반항 이전에 단 한 가지, 인간성의 숭고와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중에로의 초대이다.

그 진실성의 여부가 지식인과 쭉정이를 나누는 잣대다.

(중략)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말할 권리가 없다.

" 문학과지성사. 179쪽.
긴 연휴, 가벼운 기분으로 잡은 책이 마음을 흔들지도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삶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손이 자신도 모르게 등 뒤에서 갈겨쓰는 소설 같은 것이 아닐까.

나와 상의도 없이 나의 뜻이 아닌 그의 뜻으로 갈겨쓰는 소설가의 손이 어딘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
신달자 시인의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는 한국 대표 여성 시인 중 한명으로 오랜 기간 작품활동을 해온 신달자 시인이 8년 만에 펴낸 에세이집이다.

시인은 21살에 등단했지만 학업과 결혼으로 서른이 돼서야 첫 시집을 냈고, 아이 셋을 기르고 살면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오랜 기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책 제목처럼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살아온 삶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야 하는지 자신의 80년 인생에 걸친 경험을 통해 조곤조곤 들려준다.

시인은 자신이 발표한 1천 편이 넘는 시 중에 182편을 엄선한 시선집 '저 거리의 암자'도 함께 출간했다.

문학사상. 248쪽.
긴 연휴, 가벼운 기분으로 잡은 책이 마음을 흔들지도
영원한 청년의 아이콘인 소설가 최인호(1945~2013)가 2007년 출간한 에세이집 '꽃밭'이 작가 타계 10주기를 맞아 재출간됐다.

제목도 '최인호의 인생 꽃밭'으로 바뀌었다.

용서와 화합, 현재에 머물지 않는 영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따스하고도 재기 넘치는 문장에 담겼다.

천재적인 인기 작가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오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특히 작가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대목은 짓궂으면서도 정감이 넘친다.

그는 자기 아내가 "무례하고 불친절한 사람과 상대할 때는 놀랍게도 더욱 친절해지고, 공손해지며, 더더욱 상냥해진다"면서 아내의 잔소리가 "침을 놓는 것과 같다"고 했다.

"때로 아내는 내 정수리에까지 침을 놓는다.

이른바 정문일침이다.

그럴 때 나는 펄펄 뛰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내의 일침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중략) 침을 놓을 때라도 제발 아프지 않게 살살 놓아주셨으면 하는 것이다.

사람 살려. 마님." 열림원. 312쪽.
긴 연휴, 가벼운 기분으로 잡은 책이 마음을 흔들지도
◇ 이어폰 속 독서삼매경…오디오북으로 '태백산맥' 도전해볼까
귀성길이나 여행 등 장거리 이동 시엔 음악을 들으며 쉬는 것도 좋지만 '귀로 하는 독서'인 오디오북도 훌륭한 선택이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에는 다양한 라인업이 올라와 있어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

심윤경 작가의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할머니로부터 배운 사랑과 표현하는 법을 담아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미스터리물을 즐기는 귀성객들이라면 일본 대표 추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최신작인 '매스커레이드 게임'의 오디오북도 괜찮은 선택이다.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맞은 고급호텔 코르테시아 도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다.

객실의 닫힌 문 안에서는 살인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구 뒤섞이고, 가면 속에 숨겨진 과거의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연휴가 6일이나 되는 만큼 평소에 도전하기 어려웠던 긴 호흡의 대하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윌라에 전편이 올라온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은 19명이나 되는 전문 성우가 참여해 생동감과 깊이를 더했다.

조정래 필생의 역작으로 한국 분단문학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소설이다.

남한에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4·3과 여순사건이 일어난 1948년 10월부터 한국전쟁이 끝나고 분단이 굳어진 1953년 10월까지 민초들의 다사다난한 이야기가 폭풍처럼 펼쳐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