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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의 추억] 추석 선물 판도 뒤집은 참치캔의 혁명
추석 선물의 트렌드를 일순간에 바꾼 사건은 1984년 '참치캔'의 등장이었습니다. 동원산업이 내놓은 '동원참치'는 한국인에게 생소했던 참치의 맛을 전파했습니다. 참치 특유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과 한국의 맵고 칼칼한 음식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빠르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양한 참치 요리방법도 등장해, 1980년대 후반 참치는 국민적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명절 선물세트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습니다. 위 사진은 1991년 9월 18일 서울 현대백화점의 추석선물세트 판매코너입니다. 참치캔을 가득 채운 선물세트가 매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1991년 보도에 따르면 참치캔 시장은 1989년~1990년 2년 동안 무려 3배나 성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1990년과 1991년 사이 명절때마다 3000만~4000만개의 참치캔이 팔렸습니다. 명절엔 거의 전 국민이 하나씩 참치캔을 선물로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이 자그마한 캔 하나가 우리나라 명절의 선물 풍속도를 확 바꾼 것이었습니다. 국민소득의 증가와 참치캔의 등장으로 한때 백화점의 한자리를 차지했던 설탕과 밀가루와 조미료 선물세트는 완전히 사라지게 됐습니다. 어두운 밤, 시민들이 신문지를 깔아 놓고 화투를 치고 있습니다. 그 주변엔 바닥에 누워 자거나,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1982년 9월 30일 추석 전야 서울 용산역 풍경입니다. 고향 가는 차표를 미리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밤을 새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땐 이렇게 해서라도 기차역 광장에서 밤새 기다려, 입석 표를 사서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자가용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추석 기차표나 고속버스표 예매는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위 사진은 1986년 9월 5일 서울 보라매공원에 마련된 임시 고속버스표 예매 창구의 풍경입니다. 그 넓은 공원이 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고향 가는 차표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하루 종일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982년 10월 8일 동아일보에 실린 한 칼럼은 당시의 '귀성 전쟁'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추석 전 날의 귀성객이란 정말로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지독함을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가까스로 차표만큼은 준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달일에 이르르면 그 인파의 굉장함이라니! 그것은 사람의 '물결'이 아니라 '불길'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1970~80년대, 모든게 지금보다 부족했었습니다. 그래도 참치 선물 세트 들고 밤을 새워 고향을 찾아가던 사람들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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