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뒤 우주 배경의 '나비부인'… 정구호 연출가 "가장 큰 도전"
미국 장교를 사랑했다가 배신 당한 일본 개화기 게이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연출가 정구호의 손을 거쳐 500년 뒤의 우주를 배경으로 파격적 변신을 꾀한다.

정구호는 20일 성남문화재단이 제작하는 오페라 '나비부인' 기자간담회에서 "'나비부인'은 지금껏 시도한 것 가운데 가장 큰 실험"이라며 "원작의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정선을 유지하되 독특함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정구호는 현대무용과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본인의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 '구호(KUHO)'를 만들었고 제일모직 전무, 휠라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더불어 '향연' '일무' 등 전통무용을 연달아 흥행시킨 연출가이기도 하다.

'라보엠' '토스카' 등과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는 '나비부인'은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국 해군 장교 핑커톤과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초초(나비라는 뜻)상의 사랑 이야기다. 초초상은 미국에서 다시 결혼한 핑커톤을 기다리다 자살한다. 음악이 아름답지만 제국주의적 시대상과 서양 시각에서 바라보는 동양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이 담겨 있어 현대에 들어 비판을 받기도 하는 작품이다.

정구호는 이 작품을 현대화하기 위해 배경을 서기 2576년 미래의 우주로 바꿨다. 각각 엠포리오 행성과 파필리오 행성을 대표하는 핑커톤과 초초상이 동등한 위치의 협상자로 만나는 설정이다. 정구호는 "원작에 담긴 강대국-약소국의 제국주의적 요소를 배제하고, 핑커톤과 초초상의 계급 차이도 없애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 가사까지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에게 한국어 자막을 활용해 바뀐 설정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500년 뒤 우주 배경의 '나비부인'… 정구호 연출가 "가장 큰 도전"
무대와 의상, 조명 등엔 정구호가 연출하는 작품 특유의 미학을 담았다. 단순한 무대에 강렬한 색과 선 등을 활용해 인상을 남기는 식이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눈을 형상화해서 디자인했다. 무대 전체와 의상 등은 모두 아이보리 색으로 꾸민 뒤 조명을 비춰 색을 입힌다는 구상이다. 합창단이 직접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비대면 영상으로 등장하거나, 공중에 센서를 대고 서명을 하는 장면 등 SF적인 연출도 담았다.

정구호는 파격적인 시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일부 시각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문화 예술은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과, 전통을 현대에 맞게 바꾸려고 하는 사람과, 새로운 실험을 하는 실험가 등 세 부류의 사람이 조화를 이룰 때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비부인'은 유명한 오페라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원작 내용이 지닌 아쉬움을 바꾸려고 도전했던 연출가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도전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은 다음달 12~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초초상 역은 소프라노 임세경과 박재은이, 핑커톤 역은 테너 이범주와 허영훈이 연기한다. 지휘는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는 파트릭 랑에가 맡는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