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 서거 1천500주기 특별전 내일 개막
무덤 지키던 진묘수·묘지석 등 국보 9건 포함 126건 소개
죽음과 삶 잇는 27개월의 과정…백제 무령왕의 마지막을 만나다(종합)
'을사년(525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토왕(土王) 등에 문의해 남서 방향의 토지를 매입해 능묘를 만들었기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아들은 장례를 치러야 했다.

돌아가신 왕을 위해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좋은 땅을 '돈 1만매'를 내고 샀고, 이를 증명하는 문서 내용을 돌에 새겨 넣었다.

이른바 매지권(買地券)이다.

영원한 안식처가 될 공간은 연꽃무늬 벽돌로 가득 채웠다.

생전 사마왕으로 불렸던 무령왕(재위 501∼523)의 장례는 아들인 성왕(재위 523∼554)이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시험대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죽음과 삶 잇는 27개월의 과정…백제 무령왕의 마지막을 만나다(종합)
국립공주박물관이 19일 개막하는 특별전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는 무령왕 서거 1천500주기를 맞아 장례로 이어진 두 왕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시다.

안정적인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하며 백제 재건에 힘을 쏟았던 왕의 죽음부터 장례 절차, 무덤 안치 등 약 27개월의 과정을 국보 9건 등 총 126건 697점의 유물로 보여준다.

개막을 하루 앞둔 18일 언론에 공개한 전시장은 장례식장 같은 모습이었다.

조문객이 된 것처럼 흰 국화가 담긴 종이를 상자에 넣으면 '하늘이 무너진들 이보다 비통할까'라고 적힌 화면 너머로 추모의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물은 무령왕릉의 핵심, 국보 '무령왕릉 지석'(誌石)이다.

죽음과 삶 잇는 27개월의 과정…백제 무령왕의 마지막을 만나다(종합)
1971년 발굴 당시 출토된 묘지석은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인 백제 사마왕'이란 문구를 통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지위가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김미경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에서는 무령왕의 죽음을 왕과 제후에게 쓰는 '훙'(薨)으로 기록했지만, 묘지석에는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을 쓴 점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장례를 황제의 격식으로 치르며 자신의 위상까지 높이려 한 의지"라고 말했다.

좌우 벽면을 따라 늘어선 휘장을 따라 걸으면 태자 명농(훗날 성왕)이 예와 정성을 다해 무령왕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는 절차를 엿볼 수 있다.

왕릉 터를 구입할 때 쓴 동전 꾸러미, 무덤방을 꾸민 연꽃무늬 벽돌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백제의 상장례 문화를 두루 볼 수 있도록 서울 석촌동 고분, 하남 감일동 유적, 부여 왕릉원 4호분 등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도 함께 전시했다.

죽음과 삶 잇는 27개월의 과정…백제 무령왕의 마지막을 만나다(종합)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무령왕의 마지막 안식처, 나무 관이다.

처마가 달린 집 모양의 관은 화려한 못과 고리로 장식했는데 왕이 생전 머물던 공간을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에는 길이가 약 2m 49㎝에 이르는 나무 관을 두고 무덤에서 나온 금동신발, 관 꾸미개, 베개와 발 받침, 청동거울 등을 함께 보여준다.

김 학예연구사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색의 유리구슬을 소개하며 "최근에는 (장례 과정에서) 왕의 입 속에 구슬 일부를 넣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장례 행렬을 꾸리고 제사를 지내는 과정도 상상해볼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철제 무기인 은으로 장식한 창과 자루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나무관 앞과 널길, 널문 앞에서 각각 제사를 치른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과 삶 잇는 27개월의 과정…백제 무령왕의 마지막을 만나다(종합)
오늘날에도 미식가들의 찬사를 받는 은어 뼈가 무덤 안에서 발견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장례의 마지막은 무덤을 지키던 짐승 조각인 '진묘수'(鎭墓獸)가 채운다.

국보 '무령왕릉 석수'(石獸)는 무덤의 수호신이자 왕의 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여겨졌다.

이정근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장례식의 주인공인 무령왕과 장례를 주관한 성왕 두 명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며 "같은 유물이지만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달라"고 말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삶과 죽음이 이어지듯 1천500년 전 무령왕의 죽음에서 시작돼 성왕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무령왕릉을 새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12월 10일까지.
죽음과 삶 잇는 27개월의 과정…백제 무령왕의 마지막을 만나다(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