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매번 생각날 만큼 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덕후와 머글 공히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물가상승은 역시 연주회 티켓 가격이다. 덕질 근본주의에 입각한다면 무릇 덕후에겐 ‘이 돈을 여기에 쓰는 게 맞나?’라는 생각 자체가 성립되지 않겠지만, 덕후와 머글 사이 그 어딘가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요즘 연주회의 티켓값에 적잖이 놀랐을 터다. 화려한 오케스트라 라인업만큼 티켓 가격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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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내한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티켓가는 최고가 55만원, 최저가 10만원, 평균 가격은 32만 8천원이다. 6년 전 내한시에는 최고가 45만원, 최저가 7만원, 평균가격 27만 2천원이었으니 티켓 평균 가격은 20.5% 올랐다.

역시 6년만에 내한하는 로열콘세트르허바우오케스트라를 보자. 최고가 45만원, 최저가 10만원, 평균 가격은 28만원이다. 6년 전 내한시에는 최고가 33만원, 최저가 7만원, 평균가 20만 5천원이었다. 6년새 약 36.6% 상승했다.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최고가 48만원, 최저가 9만원, 평균 가격 28만 8천원이다.

‘오케스트라 삼대장' 만으로도 느슨해진 덕후의 지갑에 매서운 기강이 몰아치는 마당에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도 12년만에 내한한다. 최고가 38만원, 최저가 8만원, 평균 가격 24만 2천원의 티켓 가격을 선보인다. 12년 전 내한 연주회의 평균 티켓 가격은 15만 8천원이었으니 53% 상승률이다. 네 개 단체의 내한 연주를 1회씩만 간다 해도 적게는 37만원부터 많게는 186만원을 티켓값으로 지출한다.

익숙한 도시, 익숙한 장소에서 시차 적응도 필요 없이 꿈꿔왔던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실연을 듣는다는 건 덕후에게도 머글에게도 여러 모로 편리한 일이다. 훌륭한 연주가 주는 벅찬 감동, 그 감동이 영혼에 선사하는 풍요는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기왕 지출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연주회 전후의 모든 경험에 푹 빠지는 것만이 고가의 티켓값에 맞서는 길이다.

물론, 연주 자체의 퀄리티가 좋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는 관객이 어찌할 수 없는 요소이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자. 지갑 털릴 준비 못지 않게 신경써야 할 것들을 연주회 이전, 연주회 도중, 그리고 연주회 이후로 나누어 살펴본다.

우선, 감상할 곡들에 대한 ‘예습'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보자. 주력 감상 곡이 교향곡이라 하더라도, 그 날 같이 연주될 서곡이나 협주곡도 예습해야 한다. 연주 내내 악단의 색깔이나 지휘자의 곡 해석, 협연자의 개성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곡을 실연으로, 게다가 세계구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처음 듣는 것은 최고급 식재료로 라면을 끓이는 상황이랑 다를 게 없다. 음원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의 질감을 체험하는 것은 예습의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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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티켓값 내고 이 기분밖에 못 느끼다니!” 라며 통탄하는 순간은 거의 연주 현장에서, 연주 도중에 발생한다. 휴대폰 알람소리, 전화소리, 휴대폰 혹은 프로그램북이 떨어지며 나는 와장창 소리, 주변 사람의 부스럭 소리, 가방 지퍼 여닫는 소리 등 온갖 소음들은 콘서트홀의 섬세한 음향 효과에 힘입어 더욱 우렁차게 홀 전체로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무대에서 나는 피아니시시모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런 ‘소음 관크'는 큰 분노를 유발한다. 소중한 순간들을 이런 불미스러운 상황으로 망치지 않으려면 나부터 조심해야 한다. 패딩 등의 착용은 피하고, 부피가 큰 겉옷은 왠만하면 보관함에 맡기자. 휴대폰은 반드시 전원을 끄고 (비행기 모드도 안된다), 소지품은 가방에 모두 넣어 의자 밑에 넣어둔다.

프로그램북은 연주 중에는 어지간하면 들추지 않도록 한다. 생각보다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주변 사람에게 크게 전달되고, 넘기는 도중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인터미션 시간에 어텐던트로부터 주의를 받을 지 모른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홀 전체에 너울너울 흘러가면 내 머리도, 어깨도, 심지어 손도 발도 움직이고 싶어 안달이다. 그만큼 감동적이니 어쩔 수 없다. 정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눈을 찡긋이거나 미간을 움직이자. 그 이외의 신체 표현은 주변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는 행위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절대로 손으로 지휘를 하지는 말도록 하자. 자칫 성난 주변인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관크' 기억은 실로 오래 간다. 2014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 연주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들으며 계속 손으로 지휘를 하던 그 관객, 그 지휘 소리와 같이 나던 패딩 소리는 10년여가 지난 아직도 나의 ‘분노 버튼'이다.

파괴력으로 겨루자면 ‘안다박수'를 이길 민폐는 없다고 단언한다. ‘안다박수'란 곡이 끝날 줄 알았다는 듯 부리나케 손뼉을 쳐 정적을 깨뜨려버리는 행동을 말한다. 다른 소음들은 부지불식 간 우발적으로 발생했을 수 있으니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안다박수'만큼은 아니다. 다분히 의도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박수 타이밍은 음악이 멈춘 순간이 아니다. 마지막 음이 끝난 뒤 지휘자가 지휘봉을 아래로 끝까지 내린 이후이다. 100여명의 단원과 지휘자가 곡이 끝나도 잠시간 악기를 내려놓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찰나의 고요함'마저 음악과 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관객 역시 그 고요한 순간에 조용히 숨을 고른다. 진정한 환희는 커튼콜 박수로 표현하도록 하자.

명연이란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연주자가 높은 수준의 음악을 최선을 다해 몰입해서 연주했고, 관객이 이를 오롯이 감상한 명연이 빚어졌다면 이 기억을 더 오래 떠올릴 수 있도록 감상 후기를 적을 것을 추천한다. 연주곡목, 앵콜곡, 좋았던 부분 등을 구체적으로 남겨 보자. 일기, 소셜 미디어, 친구와의 챗방 등에 적어둔 후기가 이따금씩 별처럼 빛을 내며 삶을 비춰줄 때가 온다. 인생 연주 앞에 본전 생각이란 존재할 수 없고 평생 소장할 벅찬 감동에 ‘가성비'란 성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