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

2023년 7월 6일. 현대백화점의 공시 한 건이 주목을 받습니다.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지에프홀딩스가 현대백화점, 그리고 현대그린푸드를 자회사로 갖기 위해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수 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게 공개 매수의 목적입니다. 대주주인 정지선 회장, 그리고 그 동생인 정교선 부회장 형제가 그룹의 정점에 있는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을 대량으로 취득해서 '형제 경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섭니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들이 형제 경영을 한 사례는 '의외로' 굉장히 드문데요. 현대백화점 그룹은 왜 굳이 형제 경영을 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각 계열사 사업과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알아봤습니다.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현대백화점그룹의 공개 매수는 이런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 됩니다. 현대백화점, 그리고 현대그린푸드 주주가 주식을 우선 현대지에프홀딩스에 주고요. 그럼 회사는 그 대가로 돈 대신에, 현대지에프홀딩스 주식을 새로 발행해서 보상해 줍니다. 현대지에프홀딩스가 그룹 지주사로 올라 서기 위해서는 주력 계열사인 백화점과 그린푸드 지분을 추가로 더 확보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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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의 행위제한 요건을 한번 보시죠. 지주회사 항목에 보면, 상장회사 지분을 30% 이상 소유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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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지에프홀딩스의 백화점 지분은 12.1%, 그린푸드 지분은 10.1%에 불과합니다. 공개매수가 다 끝나면 현대백화점 지분이 32%로, 현대그린푸드 지분은 40%로 올라가서 이 30% 조건을 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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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어요. 그룹 총수인 정지선 회장이 현대지에프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겁니다. 정지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은 현재 12.7% 밖에 안 되는데요. 그룹을 장악하기에는 너무 적죠. 그래서 백화점 지분과 그린푸드 지분을 내어 놓고 그 대가로 홀딩스 지분을 더 받겠다는 의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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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보면,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지주사 전환이 대체로 이런 식으로 이뤄지거든요. 대주주가 사업회사 주식을 주고, 지주사 전환을 받아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죠. 여기서 전형적이지 않은 부분은 두 형제가 나란히 대주주에 오른다는 것인데요. 지주사 지분을 형제가 함께 갖고, 경영까지 함께 사례는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롯데의 경영권 분쟁을 기억 하실겁니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주 회장, 그리고 그 동생 신동빈 회장 간 다툼이 생겼는데요. 몇 년 간 싸운 끝에 결국에는 '위너 테익스 올', 승자인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통째로 가져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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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의 또 다른 경쟁사인 신세계는 일찌감치 '갈라 치기'를 택했습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마트를, 동생인 정유경 사장은 신세계백화점을 나눠서 가져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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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것도 없이 현대백화점의 모태인 현대그룹도 형제 경영은 못했습니다.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아들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엄청난 분쟁이 있었거든요. 일명 '왕자의 난'입니다. 분쟁의 당사자였던 둘째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떼어 갖고, 다섯째인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를 비롯한 현대그룹 전체 경영권을 가져 갑니다. 현대백화점은 이 때 셋째인 정몽근 회장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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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한국의 대기업은 승계 과정에서 형제 간 계열 분리가 되는 게 관행이었어요.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SK의 경우인데요. SK는 전체 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이끌고 있고, 사촌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별도로 SK디스커버리란 이름의 지주사를 세웠습니다. SK디스커버리 밑으로는 SK케미칼, SK가스, SK D&D 같은 자회사들이 있죠. SK디스커버리 계열은 이름은 SK를 쓰고 있지만, 최창원 부회장이 단일 최대주주라 최태원 회장, 그리고 SK 그룹과 지분으로 얽혀 있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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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형제 경영을 유지하는 유명한 회사로 GS, LS 같은 범 LG 계열이 있는데요. 여기는 수 십명이 지분을 나눠 가진, 사실상 집단 지도체제 비슷한 것이어서 형제 경영이라 말 하기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 문화에서 형제 경영은 사실상 없다, 혹시 형제 경영 했다가는 큰 분란이 생긴다는 게 교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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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현대백화점은 그 어렵다는 형제 경영을 왜 택했을까요. 계기는 소액주주들이 만들어 줬습니다. 현대백화점도 애초에는 계열분리를 염두했어요. 정지선 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백화점을 쪼개서 지주사 체제로 하나 만들고, 정교선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그린푸드를 쪼개서 두 번째 지주사 체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정지선 회장은 현대백화점과 아울렛, 면세점을 가져가게 되고. 정교선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와 현대리바트, 에버다임 같은 비 유통 사업들을 가져가는 그림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 납니다. 현대백화점의 쪼개기 작업은 무산되고, 현대그린푸드는 성공한 것이었어요. 현대백화점의 인적 분할을 위한 주주총회가 올 2월에 있었는데요. 당시에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서 무산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알짜 회사인 한무쇼핑 때문이었어요. 한무쇼핑을 지주사 쪽으로 넣어서 정지선 회장에 유리하게 분할 구조를 짰다는 게 소액주주들 주장이었습니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목동점, 킨텍스점, 충청점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걸 지주사 쪽에 둬서 대주주가 꿀꺽 하려 든다는 게 소액주주들 생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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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지주사 체제를 준비했던 현대백화점 그룹은 졸지에 하나가 날아가고, 현대그린푸드 부문의 지주사 현대지에프홀딩스만 갖게 됐습니다. 문제가 된 한무쇼핑을 현대백화점 쪽으로 넣어서 지주사 쪼개기를 한 번 더 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지에프홀딩스 위주로 단일 지주사 체제를 만들 것인가. 기로에 선 현대백화점은 결국 후자를 선택하게 되죠. 단일 지주사 체제. 이것은 곧 형제 경영을 의미합니다. 현대백화점은 대외적으로 계열 분리가 없다고 발표해 못을 박습니다.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회사, 아니 대주주의 원래 의도 대로 안 됐으니까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할 법 한데요.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또 일어 납니다. 주가가 오르기 시작 한겁니다. 현대백화점 주가는 지난 6월 말에 4만7550원을 최저점으로, 두 달 만에 45%나 급등합니다. 계열 분리 무산 소식과 함께 주가가 폭등한 것이죠. 또 현대지에프홀딩스, 현대리바트 같은 회사들도 최근 한 달 간 10% 넘게 올랐고요.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사실 현대백화점 투자자 입장에선 이 회사가 배신의 역사였어요. 지난 10여년 간 주가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거든요. 한 때 20만원도 넘었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6월 말에는 5만원 아래로도 떨어졌으니까 역사적인 저점 수준이죠. 회사는 지난 10여년 간 백화점을 더 짓고, 아울렛을 늘리고, 면세점 사업에 진출하고, 지누스 같은 잠재력 있는 회사들을 인수해서 사세를 키웠는데, 그럼에도 주가는 반대로 간 겁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업을 확장한 게 실은 정교선 부회장 몫을 떼어주기 위한 작업 아니냐, 이런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현대백화점 그룹이 최근 10년 간 M&A 한 기업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습니다. 건설 장비 기업 에버다임, 건축 자재 기업 한화L&C, 기업 복지 플랫폼 이지웰, 침대 회사 지누스 같은 유통과 관련성이 크지 않아 보이는 회사를 계속 샀거든요. 계열 분리 뒤에 형제 간 사업이 겹치면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비 유통 사업만 사들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그나마 인수한 기업들이 잘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도 않았어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한섬, 리바트 빼곤 전부 실패한 M&A란 혹평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돈 생기면 기업 인수해서 까먹지 말고, 차라리 배당을 많이 해서 나눠달라는 게 주주들 요구였습니다. 현대백화점이 성장을 크게 못 해서 그렇지, 돈은 잘 벌거든요.

그런데 계열 분리를 더 이상 안 한겠다는 발표가 나왔으니까, 아, 그럼 회사가 앞으로 허튼 데 돈 안 쓰겠구나. 지금 하는 사업들 튼튼하게 잘 키우겠구나. 이런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게 주가에도 일부 반영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백화점 사업만 놓고 보면 경쟁력이 있죠. 서울 여의도 '더현대'는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1년에 문을 열었는데, 지난해에 1조원 가까운 매출을 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단숨에 전국 상위권 백화점이 됐어요. 전체 공간의 절반만 매장으로 쓰고, 나머지 절반을 실내 공원이나 맛집 같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해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조만간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가 추가로 들어온다고 하니까 매출은 더 빠르게 늘 겁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의 성공을 발판 삼아 앞으로 다른 백화점들도 더현대 처럼 바꿔 나간다고 해요.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현대백화점의 '아픈 손가락'인 면세점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사실 면세점은 사업 시작 이후에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손실이 많을 땐 분기당 200억원 이상 했어요. 그러다 올 2분기에 거의 손익 분기점, 그러니까 이익은 못 냈지만 손실도 아닌, 똔똔 상태까지 왔습니다. 이것만 해도 잘 했다는 평가가 나왔죠.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여기에 큰 호재가 날아 듭니다. 중국이 한국 단체관광을 전면 허용한 것인데요. 2017년 사드 보복이 시작된 이후 6년 여 만에 처음입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중국의 과거 사드 보복 이전에 면세점 큰 손으로 통했죠. 중국도 요즘 경제 사정이 어려운 만큼, 화장품과 명품을 쓸어 담지는 않겠지만 현대백화점 면세점이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입니다.

이전보다 주주들을 챙길 여지도 높아졌어요. 지분 정리는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가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많이 갖고, 나머지 계열사들 지분을 계속 정리를 할 겁니다. 그럼 사업하는 자회사들이 번 돈을 지주사로 보내야 하는데요. 그래야 정지선 회장, 정교선 부회장에 유리하니까요. 배당을 늘리는 게 가장 상식적이고, 현실적입니다. 현대백화점, 현대그린푸드 같은 돈 잘 버는 자회사들의 배당 성향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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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는 소각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가만히 있어도 높아지는 효과를 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전체 발행주식의 6.6%인 154만여주의 자사주가 있는데요. 이 자사주를 소각한다면 주가는 더 탄력을 받고 오를 겁니다.

현대백화점은 1971년 현대그룹에서 갈라져 나와, 현대그룹 직원들이 쓰는 유니폼이나 장갑, 신발 같은 것 납품하는 정말 작은 회사로 시작했죠. 현대그룹 안에서도 밑바닥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재계 순위 21위 그룹으로, 현대차와 HD현대 이 두 그룹 빼곤 현대 방계 기업 중에 가장 큰 회사가 됐습니다.
형제경영 한다고 주가 왜 오르는데? 현대百 놀라운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유통 경쟁사인 롯데, 신세계가 마트와 슈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중국과 동남아로 진출하고, 온라인 쇼핑 확장 전략을 가져갈 때도 현대백화점은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계열분리를 염두하고 비유통 사업을 키우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롯데, 신세계가 쿠팡과 네이버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당할 때 현대백화점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 했던 것도 있습니다.

이번 단일 지주사 체제 전환이 현대백화점의 새로운 도약, 첫 걸음이길 기원합니다. 재계 순위에 걸맞는 시장 평가도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현대백화점, 형제 경영 체제를 평화롭게 이어갈 지 눈여겨 보겠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