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세월 지나 일본에서 환수…고려 나전칠기, 전 세계 20건 못 미쳐
"정교한 문양·보존상태 뛰어나…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유물"
꽃·넝쿨 채운 4만5천개 반짝임…13세기 고려 나전상자 돌아왔다
고려시대의 뛰어난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이자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귀한 나전칠기가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인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지난 7월 일본에서 환수했다고 6일 밝혔다.

나전칠기는 무늬가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 소라 껍데기를 갈아 얇게 가공한 자개로 문양을 만들어 붙여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을 뜻한다.

특히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 미술의 정수이자 최고 공예품으로 꼽히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전 세계에 20건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꽃·넝쿨 채운 4만5천개 반짝임…13세기 고려 나전상자 돌아왔다
이번에 돌아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가로 33.0㎝, 세로 18.5cm, 높이 19.4cm 크기의 상자 형태로 고려 나전칠기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등이 고루 쓰였다.

뚜껑과 몸체에는 약 770개의 국화넝쿨무늬 자개가 감싸고 있고, 뚜껑 윗면 테두리의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를 장식해 화려함을 더했다.

바깥쪽에는 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한 연주(連珠) 무늬 약 1천670개가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상자에 사용된 자개만 해도 약 4만5천개에 달한다.

꽃·넝쿨 채운 4만5천개 반짝임…13세기 고려 나전상자 돌아왔다
각 문양을 표현한 방법은 '공예 기술의 집약체'라 불리는 나전칠기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화꽃무늬를 감싼 넝쿨줄기는 C자 형태의 금속선으로 정교하게 표현했다.

국화꽃무늬의 경우, 중심원의 지름이 약 1.7㎜, 꽃잎 하나의 크기가 약 2.5㎜일 정도로 매우 작은데 꽃잎 하나하나에도 음각으로 선을 새기는 등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 썼다.

약 80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유물의 상태는 좋은 편이라고 재단 측은 전했다.

재단 관계자는 "문양과 보존 상태가 고려 나전을 대표할 만큼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간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유물"이라며 "고려 나전칠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꽃·넝쿨 채운 4만5천개 반짝임…13세기 고려 나전상자 돌아왔다
이어 "나전 본래의 무지갯빛과 광택이 살아있어 오색 영롱함을 보여주고, 금속선 등 장식 재료의 보존 상태도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나전 중에서 매우 탁월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약 1년간의 노력 끝에 유물을 환수할 수 있었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일본의 한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년 이상 보관해 왔는데, 3년 전 이를 사들인 고미술 관계자가 지난해 재단 측에 연락하면서 존재가 드러났다.

꽃·넝쿨 채운 4만5천개 반짝임…13세기 고려 나전상자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귀한 유물'이라고 설명했고, 재단은 여러 차례 조사와 협상을 거쳐 복권기금을 활용해 유물을 살 수 있었다.

이번 환수 과정에서는 과학적 분석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유물을 매입하기 전 국내에 들여와 지난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X선 촬영 등 유물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목재에 직물을 입히고 칠을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칠기 제작기법이 쓰인 점을 확인했다.

유물은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관리하며 정밀 조사를 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라며 향후 나전칠기의 전통 기술 복원을 위한 연구 및 전시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꽃·넝쿨 채운 4만5천개 반짝임…13세기 고려 나전상자 돌아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