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이제서야 '70년 망각' 굴레 벗는 국군 포로·납북자
지난달 18일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때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옷깃에 각각 태극기와 성조기 배지를 달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달랐다. 일장기가 아니라 파란색 리본 배지를 착용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5월 방한했을 때도 옷깃에 파란색 리본을 달아 주목받았다. 1997년 이후 모든 일본 총리는 공식 행사에 항상 파란 리본을 달고 나타난다.

파란 리본은 일본인 납북자와 가족을 이어주는 파란 하늘을 뜻한다. 납북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 일본 총리들은 총리로 선출된 날 납북자가족회가 만든 파란 리본을 직접 돈을 주고 산다. 일본 정부의 납북자 송환 노력은 집요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두 번 방북했다. 김정일은 일본인 13명 납치 사실을 인정했고, 5명을 일본에 보냈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 17명이 납북됐다고 보고, 북한이 “사망했다”고 해도 끝까지 파고들고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때도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우선순위로 꺼냈다. 일본뿐만 아니다. 미국은 2009년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을 데려오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6·25전쟁 당시 국군 포로는 약 8만2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쟁 직후 인도된 국군 포로는 8343명에 불과했다. 강제 억류된 나머지는 탄광 등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16년 말 500여 명의 국군 포로가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했을 뿐, 정확한 생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손 놓고 있는 건 국군 포로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516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전후 납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999년 제정된 ‘국군 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엔 실태 파악과 송환을 위한 국가의 책무가 규정돼 있고, ‘군사정전 이후 납북 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도 납북자 생사 확인과 송환에 관한 국가의 의무가 들어있다. 일본은 17명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온 데 비해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역대 어떤 정부도 선뜻 나서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다섯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간간이 전후 납북자와 남측 가족 간 만남이 이뤄졌지만, 철저하게 비공개에 부쳐졌다. 납북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북한의 눈치를 본 것이다. 한국에서도 2005년 민간 차원에서 국군 포로와 납북자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를 기억하자는 물망초 배지 달기 범국민 운동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리본 및 배지를 단 정치인과 국무위원은 보지 못했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는 ‘사석(死石)’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탈북 국군 포로가 유엔에 “한국 정부를 움직여달라”고 호소했고, 납북자 가족들이 “미 국무부에서 납치 문제를 거론해달라”고 하소연했겠나. 우리 정부가 방관하는 사이 2021년 유엔이 처음으로 국군 포로 문제를 꺼냈다. 46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는 ‘송환되지 않은 북한 내 전쟁 포로 및 그 후손들이 지속적인 인권 침해에 시달리는 데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조차 올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나서는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납북자, 억류자 및 미송환 국군 포로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포함한 인권 및 인도적 사안 해결을 추진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든 포로와 억류자, 납치자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정상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통일부는 장관 직속으로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전담할 대책반을 신설한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첫 대외 일정도 국군 포로, 납북자 관련 단체 면담이었다. 실행력 있는 후속 조치들이 이어져야 한다. 당장 7개월째 표류하고 있는 국군 포로, 납북자 진상 규명과 가해자 처벌 및 예방을 위한 ‘유엔 강제 실종 방지 협약’ 후속 입법에 나서야 한다. 조국을 위해 싸운 이들을 70년 적지에 버려진 채로 놔두고,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애국심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