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이 재생 화장지로…아동센터 등에 1년간 1만7천개 기부
춘천시 강남동 통장 40여명 '합심'…"보탬 되는 삶 행복하고 뿌듯"
[#나눔동행] 환경 살리고 이웃 돕고…두 마리 토끼 잡는 '우유팩수집러'들
"우유팩 가지러 왔습니다.

" "네, 저기 씻어둔 거 가져가시면 됩니다.

"
주인과 담소를 나눈 어르신들이 카페 한 켠에 깨끗이 씻어 말린 우유팩 수십 개를 익숙하단 듯 가져간다.

'폐지를 모으는 건가' 싶지만, 이들 얼굴에는 노동의 고됨보다는 뿌듯함과 즐거움이 맥연히 엿보인다.

춘천시 강남동 통장협의회 총무직을 맡고 있는 곽길주(66)씨와 유봉열(69)·이옥경(64)·박계화(65)·양승자(69)씨 등 강남동 통장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카페 60여곳을 돌며 우유팩을 수거하곤 한다.

온갖 음료를 제조하고 남겨진 쓸모없는 빈껍데기를 '화장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다.

쓰레기통으로 향할 운명을 피해 어떻게 식탁에서, 욕실에서 새 운명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들은 춘천시에서 시행하는 자원순환 사업을 통해 우유팩을 화장지로 바꾸고 이를 다시 취약계층에 기부하는 봉사까지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봉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춘천시 지역아동센터 31곳을 비롯해 남부 복지관, 월드비전, 1365자원봉사센터 등에 세 차례에 걸쳐 1만7천개의 화장지를 기부했다.

후텁지근한 여름철에는 우유팩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찡그리게 하고, 무릎이 시큰거려 '가기 싫다'는 생각이 앞설 때도 많지만, 어느새 이 같은 활동을 지속한 지도 꼬박 1년이 지났다.

[#나눔동행] 환경 살리고 이웃 돕고…두 마리 토끼 잡는 '우유팩수집러'들
"봉사를 하기 전까지는 우유팩이 재사용하기 좋은 고급 펄프인 줄도 몰랐어요.

1리터짜리 우유팩 15개면 기부할 수 있는 화장지 1개가 생겨요.

환경도 살리고, 봉사도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예요.

"
우유팩은 식품 용기인 만큼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좋은 재활용 원료다.

그런데도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상당량이 폐기물로 처리되고 있다.

이에 춘천시에서는 200∼500mL 이하 우유팩 100개·500∼1천mL 미만 우유팩 50개·1천mL 우유팩 30개를 각각 화장지 2개로 바꿔주는 자원순환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7월을 기준으로 올해 춘천시에서만 우유팩 9.4t이 모였고, 그렇게 수거된 우유팩이 한 달에 1만2천개에 달하는 재생 화장지로 변신했다.

거리낌이 느껴지는 누런 색깔에 얇기까지 해 사용이 꺼려질 것 같아도, 최근 납품되는 재생 화장지는 형광물질도 안 들어가는 데다 희고 빳빳해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결코 낮지 않다.

[#나눔동행] 환경 살리고 이웃 돕고…두 마리 토끼 잡는 '우유팩수집러'들
강남동 통장들의 화장지 기부 봉사는 곽씨가 개인적으로 다니던 봉사센터에서 전해 들은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우유팩을 화장지로 바꿀 수 있다는 정보를 처음 접한 곽씨는 마음이 맞는 통장들과 '분리수거한다'는 생각으로 우유팩을 하나둘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뗀 첫 발걸음이었지만, '이렇게 해서 봉사가 되나'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다 화장지를 기부받은 이들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들을 때면 그 한마디가 기부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기부에 재미를 붙인 한 통장은 약 4일 만에 500개에 달하는 우유팩을 모아오기도 하는 등 어르신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나눔동행] 환경 살리고 이웃 돕고…두 마리 토끼 잡는 '우유팩수집러'들
"처음에는 가족들이 '쓸데없는 짓 한다'고 하기도 했어요.

우유팩은 여러 번 씻어도 비릿한 냄새가 나니까 현관 앞에 두면 냄새도 심하거든요.

그래도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하니까 이제는 집안에서 말리는 것도 이해해주고, 응원도 해줘요.

"
우유팩 수거 활동은 나이 지긋한 통장들 사이에서 삶의 또 다른 기쁨이기도 하다.

곽씨 등 통장들은 매주 두 번 점주와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서 우유팩을 수거한 뒤 풍물시장 인근에 모여 우유팩을 다시 씻는 과정을 거친다.

젖은 우유팩을 바닥에 엎어 바싹 말리는 동안 이들은 각자 싸 온 옥수수, 감자, 커피 등 먹거리를 함께 나눠 먹고, 스스럼없이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곤 한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쌓는 추억은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박씨는 "나이 먹어서 집에만 있는 것보다 함께 좋은 일도 하고, 친목도 다질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우유팩을 하나하나 펴야 해서 손가락도 팔목도 아프곤 하지만 활동 자체가 즐거워 계속해서 활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눔동행] 환경 살리고 이웃 돕고…두 마리 토끼 잡는 '우유팩수집러'들
이들은 오는 9월 우유팩을 재사용 화장지로 가공하는 제지업체를 찾아 공정을 들여다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올해가 가기 전까지 취약 계층에 화장지를 기부하는 활동을 한 차례 더 진행할 예정이다.

복지관 배식, 수해복구 지원 등 여러 봉사에도 늘 팔을 걷어붙이는 이들에게 기부 활동은 이제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 됐다.

곽씨는 "봉사할 때마다 '뭔가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너무 뿌듯하다"며 "웃는 모습들을 보면 보람차고,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만, 이런 활동이 춘천을 넘어 더 크게는 지구를 살리는 활동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눔동행] 환경 살리고 이웃 돕고…두 마리 토끼 잡는 '우유팩수집러'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