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작가' 채성필, 그가 이번엔 '파랑의 물'을 그렸다
'흙의 작가'. 채성필 작가를 부르는 별명이다. 그가 물감 대신 흙으로 그린 그림을 통해 대지와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신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고, 자연의 음양오행 역시 흙(土)이라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져 있다. 흙은 동서양의 경계를 넘은 본질이자 모든 생명의 순환의 공간"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채 작가는 진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서울로 이주했다.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수묵화를 공부하다 조선시대에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 채색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알고 보니 흙은 조선뿐 아니라 유럽의 고대 동굴 벽화나 프레스코화 등 미술사의 시작 이래 꾸준히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재료였다. 채 작가는 흙이라는 소재와 주제에 깊이 빠져들었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다. 이후 서울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국내외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세르누시박물관, 파리시청, 피노재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소장 중이다.
물의-초상-210520-200x160cm-캔버스에-천연안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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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KIAF 서울 2023 하이라이트에서는 채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흙 그림'과 함께, 흙에서 채취한 원료를 정제한 파랑 천연안료로 만든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흙 그림은 근원적 자연과 땅의 모습을 표현한 반면, 파랑 천연안료로 그린 작품은 물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작가는 "흙이라는 그릇에 담긴 물은 땅의 에너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며 "파랑이라는 색은 땅을 둘러싼 바다이자 땅의 역사를 지켜본 하늘의 상징색"이라는 설명이다.
(Installation View)
(Installation View)
채 작가는 "작품을 그린다"는 말 대신 "작품을 그려지게 한다"는 말을 즐겨 쓴다. 물감을 흩뿌려 작품을 만드는 잭슨 폴록처럼, 자연의 현상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과정이 채 작가에게는 그저 즐거울 뿐이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게 아니다. 죽는 날까지 작업만 하고 싶다. 목표가 있다면 하루하루 작가로서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다."

작가 생활 내내 흙을 비롯한 자연에 천착해온 채 작가는 요즘 인간의 삶에 대한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인간의 역사와 땅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언젠가 발표할 시기가 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양의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동양 철학과 미술을 공부했고, 지금은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서양의 프랑스에 산다. 그는 "모든 만남은 새로운 에너지와 창작의 모티브를 준다"며 "이번 KIAF에서 벌어질 작가들과 관객들의 만남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성수영 기자
익명의-땅-230514-162x130cm-캔버스에-흙과-수묵-2023
익명의-땅-230514-162x130cm-캔버스에-흙과-수묵-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