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시간 산정이 가능한 사업장에서 포괄임금제 계약을 맺은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근로자들의 실제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추가 임금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봤다.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 등 근로자 22명이 B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A씨 등은 2004년부터 2017년까지 폐기물 처리 업체인 B사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B사와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이 미리 정해진 포괄임금제 계약을 맺었다. 주 40시간 기준의 기본임금과 1년에 660시간분으로 정해진 각종 수당을 모두 더한 금액을 12등분해 매월 받는 구조였다.2019년 A씨를 비롯한 B사 근로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근무수당을 따로 지급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업무 특성과 많은 업무량 때문에 휴게시간에도 전혀 쉬지 못했다"며 "근무표에 적힌 시간보다 30분씩 일찍 출근했다"고 주장했다. B사 측은 "설령 그러한 지시가 있었더라도 포괄 임금 약정을 맺은 만큼 추가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1심은 재판부는 "유효한 포괄 임금 약정"이라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판단은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묵시적인 포괄 임금 약정이 체결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대 근무 시간은 월별로 예측이 가능하고 기재된 근무내역으로 실제 근로 시간도 산정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 등이 매일 30~40분씩 추가로 일했다고 인정하고 추가로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대법원도 2심 법원의 판단에 수긍하며 포괄임금약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대법원은 B사가 A씨 등에게 줘야 하는 임금에 대해서는 계산을 다시 해야한다고 보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직원들에게 줘야 할 금액 중 이미 지급된 수당이 있다면 그 차액을 지급해야 하는데 2심은 '추가 근로시간에 통상시급을 곱한 임금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심은 이미 지급된 수당이 원고들의 실제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한 법정수당에 미달하는지 여부를 심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23일 오전 이 후보자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취재진을 만나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은 어느 나라나 사법제도의 기본"이라며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겠다"고 말했다.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지명됐다는 지적에 이 후보자는 "친한 친구의 친구"라며 "당시 서울대 법대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아 몇 되지 않아 아는 정도지 직접적인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최근 법원에서 추진 중인 압수수색 사전영장심문 제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차후에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이 후보자는 "아직 후보자에 불과하고 국회의 청문 과정과 인준 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말을 줄였다. 이 후보자는 이날 김명수 현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법원에 방문했다. 이는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 직후 현 대법원장을 만나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김 대법원장 역시 2017년 8월 후보자로 지명된 후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법원을 방문한 바 있다.이 후보자는 이후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구성해 청문회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후보자 지명 후 국회 인사청문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임명한다.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사법연수원 16기·사진)는 32년간 재판과 연구에 힘을 쏟은 정통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거침없이 밀고나가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호불호’가 뚜렷한 이 같은 성향이 사법부 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지적이 끊이지 않은 친노동 편향 판결, 재판 지연, 법관 이탈 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주관 뚜렷한 정통보수 법관이 후보자는 부산중앙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서울민사지법에서 법관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방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 등을 지냈다. 법원 내 엘리트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으로 법학 이론뿐만 아니라 해외 법제에도 밝다는 평가다.보수적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을 하는 등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2016년 투레트증후군(틱장애) 환자의 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행정처분을 차별이라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판결은 그해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그는 같은 해 1심을 뒤집고 “한의사도 뇌파계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해 주목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배우 신은경 씨의 사진과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한 병원에 퍼블리시티권(초상사용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치적 성향이 거의 없는 데다 그동안의 판결 등을 살펴봤을 때 대법원을 중립적으로 이끌어나갈 인물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주관이 뚜렷한 성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극 추진하고, 반대의 경우엔 주저하지 않고 비판해왔다. 상대가 현직 대법원장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21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에 취임할 당시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정치가 경제를 넘어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 정치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사실상 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여겨졌다. ‘친노동’ 사법부 막 내리나법조계에선 이 후보자가 임명되면 사법부의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김 대법원장 시절 선명하던 친노동 성향 판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권영준·서경환 대법관이 취임한 데 이어 이 후보자가 합류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대법관 13명 중 진보 성향은 5명으로 줄어든다.오석준·권영준·서경환 대법관에 이어 또 한 번 ‘서오남’(서울대 출신 50·60대 남성)이 사법부 수뇌부로 지명되면서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선 비(非)서울대, 재야 변호사, 지방법원 판사, 여성 법관 등 다양한 출신이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급격히 보수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과제로 꼽히는 재판 지연 문제가 해결될지도 관심을 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합의부가 민사 본안사건을 처리하는 데 평균 364.1일이 걸렸다. 2020년(309.6일)보다 55일 길어졌다. 같은 기간 형사사건 1심 합의부 평균 처리 기간도 156.0일에서 181.4일로 늘었다.배석판사들이 ‘주 3회 선고’에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등 법원 내 ‘워라밸’ 경향이 짙어진 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2020년)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진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각 지방법원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2019년)으로 부장판사들이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업무 부담을 늘리기 어려운 분위기까지 조성됐다.법조계 관계자는 “본인 주관이 확실해 강하게 개혁을 밀고 갈 수 있는 인물이지만, 이 같은 성향 때문에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며 “다양한 법원 내부의 의견을 얼마나 조율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균용 후보자는△경남 함안 출생(61)△부산중앙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서울민사지방법원·부산고등법원·인천지방법원 등 판사△대법원 재판연구관△대전지방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서울남부지방법원장△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대전고등법원장김진성/도병욱/박시온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