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16개 지자체 조례 제정…정작 물량 부족에 '고심'
[현장] '통증의 왕' 대상포진…백신 수급난에 힘겨운 접종
"요즘 대상포진 백신 구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운 좋게 기회를 얻었네요.

"
21일 오전 9시 30분 인천시 남동구 보건소.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대상포진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노인들의 발걸음이 몰렸다.

최근 대상포진 백신을 확보한 남동구는 이날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75세 이상 주민 51명을 대상으로 첫 무료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만수동에 사는 최영자(78)씨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보건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신분증을 제시한 뒤 예진표를 작성했다.

최씨는 '평소 몸에 마비 증상은 없는지', '과거 접종 이력은 있는지' 등을 차례로 묻는 의사에 말에 대답한 뒤 주사실로 이동해 왼팔 소매를 걷었다.

그는 "8년 전 여동생이 대상포진으로 등 전체가 수포로 덮여 병원에서 고생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접종을 받을 수 있을 때 받으려고 일찌감치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날 사전 예약으로 백신을 맞은 노인들은 접종 이후 10분간 대기하다가 신체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귀가했다.

아내와 함께 보건소를 찾은 이모(82)씨는 "대상포진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 구청에서 문의했더니 마침 무료 접종을 진행한다고 해서 예약했다"며 "아내가 걱정됐는데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현장] '통증의 왕' 대상포진…백신 수급난에 힘겨운 접종
대상포진은 신경절을 따라 띠 모양의 발진과 수포가 발생하는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동반해 '통증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주요 발병 원인으로는 면역력 저하가 꼽히며 고령일수록 발생 빈도가 높고 발병 후 신경통 등 합병증 위험성도 크다.

남동구는 올해 3월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만 65세 이상 주민 1만여명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기존에 쓰이던 외국 제조사 제품의 수입이 중단된 데 이어 국산 백신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량 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물량 수급난으로 계약 자체가 늦어지면서 남동구는 결국 조례 제정 5개월 만에 첫 접종을 시작했다.

그마저도 입고 수량이 1천개 분량으로 제한돼 있어 백신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접종 일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시중 의료기관에서 1회당 30만원씩 2차례 접종을 받아야 하는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보건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지만, 수급난으로 혜택이 축소될까 우려하고 있다.

남동구 관계자는 "분명 좋은 취지의 사업이지만, 백신 확보가 어렵다 보니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통증의 왕' 대상포진…백신 수급난에 힘겨운 접종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을 시행 중인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백신 품귀 현상으로 대부분 남동구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동구가 대상포진 무료 접종을 조례로 정한 전국 지자체 116곳을 대상으로 사업 추진 현황을 문의한 결과 46곳으로부터 회신받을 수 있었다.

이 중 예방접종을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지자체는 상대적으로 접종 인원이 적은 2곳에 불과했고, 32개 지자체는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 12개 지자체는 아예 백신 접종을 중단하거나 잠정적으로 연기했다고 응답했다.

만 65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은 현 정부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지만, 아직 국가 필수예방접종 대상은 아니어서 정부가 별도로 수급 관리를 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남동구는 질병관리청에 대상포진 백신 수급을 위한 대책 마련 요구와 함께 국가 필수예방접종 포함 등을 건의하기로 했다.

또 백신 수급이 안정화될 때까지 사전 예약제로 접종 인원을 조율하는 한편 계약사와 협의해 적극적인 물량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남동구 관계자는 "전국적인 상황을 볼 때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신속한 백신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