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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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프선수는 두 종류로 나뉜다. 우승을 해 본 선수와 우승이 없는 선수. 문제는 우승이 실력만으로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력은 기본이고 운이 따라줘야 우승을 거머쥘 수 있다. 그렇다고 운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행운이 깃들더라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도 하다. "우승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도 그래서다.

20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이원여자오픈 최종라운드에서 한진선(26)이 그랬다. 행운이 만들어준 두 번의 샷 이글로 우승 기회를 잡았고 탄탄한 기본기로 이를 지켜냈다. 결과는 6타 차이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한진선은 이날 강원도 정선 하이원CC(파72·6573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2개에 버디 5개를 잡아 7언더파 65타를 치며 최종합계 14언더파 275타로 우승했다. 자신의 시즌 첫 승이자 생애 첫 타이틀 방어다. 14언더파는 2019년 임희정이 세운 이 대회 최소타(13언더파)를 1타 줄인 신기록이다.

2018년 KLPGA투어에 데뷔한 한진선은 지난해까지 꾸준한 상위랭커로 활약했다. 하지만 우승 한방이 없어 강자로 자리매김하진 못했다. 프로골퍼로서 한진선을 한단계 끌어올려준 무대가 바로 하이원여자오픈이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데뷔 131경기 만에 첫 승을 올리며 투어 강자로 올라섰다.
사진=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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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 타이틀 방어에 나선 이번 대회에서 초반에는 썩 좋은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2라운드까지 중간합계 2언더파, 공동 13위에 그쳤다. 그래도 3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최종라운드에는 선두와 2타 차이로 우승경쟁에 가담했다.

초반 파 행진으로 숨을 고르던 한진선은 6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이날 경기 흐름이 뒤집힌 것은 7번홀(파4)이었다. 핀까지 161야드를 남겨두고 두번째 샷을 친 한진선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샷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러프에 떨어진 공은 두어번 바닥을 튀어오른 뒤 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샷 이글. 한진선 스스로도 결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참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한박자 늦게 캐디와 기쁨을 나눴다.

단숨에 2타차 선두로 올라선 한진선에게 11번홀(파5)에서 한번 더 행운이 따랐다. 99야드를 남기고 친 세번째 샷이 똑바로 핀을 향하더니 홀에 쏙 빠졌다. 한 라운드에서, 특히 최종라운드에서 두번의 샷 이글을 만들어낸 것이다.

후반에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타수를 잃지 않고 선두를 지켜냈다. 14번홀(파3)에서는 티샷이 짧아 러프에 빠졌지만 감각적인 어프로치샷으로 핀 바로 옆에 공을 붙여 파를 지켰고,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도 러프에서 친 세번째 샷을 핀에 바짝 붙이며 타수를 잃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진선은 중학교 2학년때 골프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격선수로 활약했다. 입문 석달만에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을 정도로 재능도 있었다. 그 덕인지 멘탈이 단단하고 중장거리 퍼트를 잘한다. 이번 대회 한진선의 퍼팅 이득타수는 1.87타로 출전 선수 중 4번째로 높았다.

생애 첫 타이틀방어에 성공한 뒤 한진선은 "하루에 이글을 두번이나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저 신기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한창 더운 시기이지만 이 코스는 고지대라 시원하다. 그래서 여기 오면 늘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박민지, 이예원과 시즌 3승 경쟁을 펼친 임진희(25)는 8언더파 280타로 공동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결과로 시즌 8번째 톱10을 기록하며 박지영과 함께 올 시즌 최다 톱10 선수가 됐고 대상포인트에서도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해 데뷔 첫 승에 도전했던 이제영은 4타를 잃고 5언더파 공동 12위까지 떨어졌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