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재판에 대한 불신에 높은 인기…'정의 실현' 대중 열망 자극
불법 넘나드는 자의적 각색·자극적 영상에 마녀사냥·사적제재 우려

제도권의 공권력을 대신해 범죄자를 쫓고 진실을 밝힌다는 '유튜버 자경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의 수사·재판 과정에 대한 불신과 정의 실현에 대한 열망이 투사되면서 수백만 조회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관심 속에 잊혀질 뻔한 사건에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조회수를 노린 자의적 각색과 자극적 영상이 마녀사냥과 사적제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중은 정의를 원한다'…범죄자 쫓는 유튜버 자경단
◇ '롤스로이스 사고'로 조회수 수백만…불법촬영·마약사범 잡는 유튜버도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관련 영상으로 350만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카라큘라)가 대표적이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 도로에서 약물에 취한 채 롤스로이스를 몰다 행인을 쳐 뇌사에 빠트린 혐의로 신모(28)씨가 구속된 사건이다.

신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가 이튿날 석방돼 논란이 일었다.

카라큘라는 사고 며칠 뒤 신씨가 사고 이후 구호 조치 없이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식의 영상을 게시해 누리꾼의 공분을 끌어냈다.

일부는 영상에 "응원한다", "싸워줘서 감사하다"는 등의 댓글과 함께 슈퍼챗(후원금)까지 보냈다.

급기야 신씨가 직접 자기 얼굴과 실명을 노출한 채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카라큘라로부터 신문을 받는 듯한 모습도 연출됐다.

관련 영상들이 화제를 모으면서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보름 만에 20만명이 늘어 현재 109만명에 이른다.

'대중은 정의를 원한다'…범죄자 쫓는 유튜버 자경단
구독자 13만명의 유튜브 채널 '감빵인도자'는 '불법 촬영을 하는 성범죄자를 잡아 경찰에 넘기는 채널'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이 채널은 실제 지하철역 등에서 불법 촬영 범행이 이뤄지는 장면은 물론 직접 '검거'하는 과정까지 촬영해 게시한다.

배달 기사를 비하하는 표현을 그대로 채널명에 가져다 쓴 유튜브 채널은 배달 기사의 교통 법규 위반 장면을 직접 포착하거나 제보 받아 경찰에 신고한 뒤 이들이 경찰에 적발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구독자가 48만명에 이른다.

◇ "당국 불신·정의구현 심리 작용"…마녀사냥·사적응징 우려
전문가들은 수사당국을 불신하는 한편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가 이들 채널의 인기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크게 응징한다는 뜻의 '참교육'을 내세워 인과응보식 '사이다 결말'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고 공적 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측면이 있다"면서 "제도권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않는 '악에 대한 척결과 응징'에 대한 대중의 심리가 이들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은 초기 단계에서 경찰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사건을 위주로 파고들고 있다"며 "'정의'라는 타이틀로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중은 정의를 원한다'…범죄자 쫓는 유튜버 자경단
우려도 적지 않다.

범죄행위는 직접 증거와 정황 증거의 종합적 분석을 통해 엄정하게 규명돼야 하는데 관련 전문성이 없는 유튜버 개인의 판단에 의지해 사건이 재구성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불분명한 정보가 사실인양 무분별하게 퍼져나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고에서는 가해자 신씨가 피해자를 한 차례 들이받은 뒤에도 액셀을 밟았다는 등의 의혹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확산됐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인을 낙인 찍어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형사재판을 거쳐 잘못한 만큼의 처벌을 받는 것이 합당한 데도 상황을 극적으로 각색해 과도한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카라큘라는 지난 6월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 직업, 출생지, 전과기록 등을 공개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피해자 본인이 해도 '사적 제재'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행위를 제3자가 감행한 셈이다.

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신상공개위원회를 거쳐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

'대중은 정의를 원한다'…범죄자 쫓는 유튜버 자경단
이 교수는 "(이런 활동이) 지나치게 되면 진실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으려는 시도로 불법 행위가 될 개연성이 있다"며 "'공익'을 내세우지만 이들 정체가 불분명한데도 여론을 주도해 위태위태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 조회수가 올라갈수록 광고와 후원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보니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경우마저 등장했다.

마약사범과 아동성착취물 소지자 검거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한 유튜버는 함정수사나 다를 바 없는 방식을 동원하다 지난 4월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이 유튜버는 작년 10월부터 SNS에 마약 및 아동성착취물 관련 글을 올려 이용자를 특정 장소로 유인한 뒤 112 신고를 하면서 검거 과정 전반을 유튜브에 올렸다.

또 영상을 삭제해 준다는 명목으로 건당 200만∼300만원을 뜯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중은 정의를 원한다'…범죄자 쫓는 유튜버 자경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