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해서 신림동 산다고도 못해…살기 좋은 동네인데 억울"
온라인서 신림동 비하 표현도…"집단 혐오 경계해야"
잇단 흉악범죄에 신림동 '울상'…특정지역 낙인찍기 우려
"신림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니까…."
이틀 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서울 관악산 생태공원 등산로에서 19일 만난 신림동 주민 김모(71)씨는 "신림동에 산다고 창피해서 말도 못 하겠다"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40년째 관악구에서 산다는 장동호(59)씨도 "관악구는 넓고 인구도 많고 살기 좋은데 너무 안 좋은 동네인 것처럼 자극적으로 언론에 나와 안타깝다"고 했다.

이 곳에선 지난달 21일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일어난 무차별 흉기 난동이 벌어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등산로 성폭행 사건까지 터졌다.

공교롭게 같은 동에서 흉악범죄 두 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곳 주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었다.

신림동은 과거 '고시촌의 메카'로 알려졌던 서울 남부의 평범한 서민 지역이지만 전국적으로 주목받은 흉악범죄가 연이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신림동을 '우범지대'로 비하하는 표현을 쓴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체감하는 이들 역시 신림동 주민이다.

이날 신림동에서 만난 주민들은 "동네에 대한 편견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며 한목소리로 걱정을 쏟아냈다.

직장인 김모(31)씨는 "이런 사건들이 관악구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닐 텐데 가난한 젊은이들이 사는 동네라는 이미지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잇단 흉악범죄에 신림동 '울상'…특정지역 낙인찍기 우려
실제 인구수 대비 범죄발생률을 살펴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관악구는 8위다.

서울시가 공개한 2021년 기준 자치구별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 및 강제추행·절도·폭력) 발생건수는 중구가 인구 1천명당 21.7건으로 가장 많다.

종로구(17.6건), 강남구(11.4건), 영등포구(10.4건), 용산구(10.0건) 등이 뒤를 잇는다.

관악구는 8.8건이다.

동 이름을 사용해 범죄에 이름을 붙이는 언론 보도도 신림동 주민들로선 불편하다.

신림동에서 45년을 산다는 김모(68)씨는 "여기서 오래 살았지만 살기 무섭다거나 하는 걸 느낀 적이 없다"며 "강남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고 해서 강남이 무서운 동네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뉴스를 보면 유달리 신림동이라는 말이 집요하게 나오더라"며 "나쁜 이미지가 생겨 사람들이 안 올까 걱정"이라고 했다.

관악구청은 19일 "신림동 성폭행 사건을 다룰 때 '신림동' 대신 '관악산'으로 표현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림동은 법정동으로 이곳엔 11개 행정동이 있는데 이번 성폭행 현장과 거리가 있는 행정동인 조원동, 신사동 등이 한데 엮이면서 상권 위축 등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림역 사거리 인근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하는 60대 김모씨는 "10여년 전 동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였는데도 지금까지도 통틀어 '신림동'이라 불리다 보니 대외적으로 '범죄도시' 같은 이미지를 얻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법정동으로서 신림동은 관악구 전체의 약 60%를 차지할 만큼 넓은 것도 사실이다.

잇단 흉악범죄에 신림동 '울상'…특정지역 낙인찍기 우려
특정 지역이 흉악범죄와 연결돼 낙인되는 혐오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신림동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경우 범인은 지역 주민이 아니었다"며 "선입견에 맞춰 신림동을 우범지대로 판단하는 것은 해당 지역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인 혐오이며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서울은 인구밀집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어서 어디든 강력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특정 지역이 우범지역이기에 사건이 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이런 선입견은 한 지역의 슬럼화를 가져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