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면 교체될 소모품으로 느껴져" 18년전 귀향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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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산다]-24 수도권 유망기업에서 고향 공무원으로…김태이 사무관
"고향은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고, 다시 열정을 갖게 해준 곳입니다.

"
전남 목포 출신인 김태이(45)씨는 2005년 무더운 여름, 9년간의 수도권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릴 적 전자기기 판매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MS-DOS 디스켓이 들어가는 컴퓨터를 일찍 접했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목포에서 초·중·고를 마친 김씨는 수도권 소재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후 2004년 2월 당시 선망받던 정보기술(IT) 기업에 입사해 프로그램 개발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주경야독'의 나날이었다.

당시 IT 업계는 밤샘과 야근이 잦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IT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새벽까지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만 했다.

"좋아했던 일이라 청춘을 불사르며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
그러나 그의 발길을 지방으로 돌리게 만든 것은 '서울 생활의 불투명한 미래'였다.

김씨는 초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좁다란 단칸방을 오고 가며 소외감을 느끼는 날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방에 산다]-24 수도권 유망기업에서 고향 공무원으로…김태이 사무관
그는 어린 자녀를 둔 직장 선배들이 자신과 함께 빈번히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보면서, '평생 직업'으로서의 고민도 했다.

"커다란 공장의 작은 톱니바퀴처럼 부서지면 바로 교체될 소모품같이 느껴졌어요.

"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 준 건 부모님이 계신 지방이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젊은이들이 선망하던 IT 기업을 2년 만에 접기로 한 것이다.

김씨는 2006년 10월 전남 영암군에 9급 공채로 입사해 홈페이지 관리책임자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지금은 익숙한 개념이지만, 특기를 살려 콘텐츠별 담당자를 지정해 운영하는 시스템(CMS)을 처음으로 도입해 군 대표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했다.

영암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김씨는 더 다양한 행정 업무를 맡고 싶어 둘째 아이가 태어난 2010년 전산직을 그만두고 이듬해 전남도청에 7급 공채로 '재입사'했다.

현재는 대변인실에서 누리집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업무를 총괄하는 5급 사무관(뉴미디어팀장)이다.

[지방에 산다]-24 수도권 유망기업에서 고향 공무원으로…김태이 사무관
김 사무관은 19일 "연고가 없는 사람이 지방에 내려와 살려고 하면 이만저만 부담이 클 것이다"며 "일단 지방에서 한 번 살아보며 시행착오 없이 잘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해 정책에 접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최근 지방 공무원 생활을 중도에 그만두는 MZ세대(1980년대 초∼ 2000년대 초 출생자)에게 선배로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이 지방이라 지방에 인재들이 더 많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