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복수 개혁안을 정부에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가 ‘재정안정파’와 ‘소득보장파’로 나뉜 채 다투느라 제대로 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무책임한 ‘맹탕’ 개혁안이 나오면 언제쯤 정부안이 확정되고, 국회의 입법 절차는 언제 마무리될지 걱정된다. 작년 11월 첫 회의 이후 9개월간 20차례가 넘는 회의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으니 딱하다.

현행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수급 개시 연령은 60~65세다. 그런데 재정계산위의 잠정적인 최종보고서엔 보험료율만 12·15·18%로 올리는 3가지 ‘재정안정 강화안’이 나열되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13%, 50%로 올리는 ‘소득보장 강화안’도 담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수급 개시 연령도 66·67·68세 3가지 방안이어서 시나리오만 최소 9개, 최대 12개에 이른다. 전문가 집단에서 이렇게 툭 던져놓기만 하면 연금개혁은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재정계산위의 속성상 ‘정치적 계산’은 예견된 것일 수 있다. 더구나 총선이 8개월도 안 남은 마당이다. 위원회는 결국 실무 의견을 냈을 뿐이다. 큰 책임은 복지부에 있다. 이대로 가다 문재인 정부 때의 실기를 반복할까 겁난다.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엔 보험료율 11%, 소득대체율은 45%로 즉각 인상하는 ‘더 내고 더 받는’ 안과 보험료율을 10년간 13.5%까지 단계적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하는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도 나왔다.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 9%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1998년 이후 25년째 그대로다. 연금개혁이 이렇게 지지부진해선 안 된다. 더구나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아닌가. 이렇게 차일피일하는 사이 기금 고갈 시점은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이번에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연금 불신은 감당 못할 지경에 달할 수 있다. 이제 복지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고 책임도 져야 한다. 행여라도 총선을 의식한다면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번이 연금개혁의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