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원화가 미국 달러화 대비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화와 일본 엔화는 물론 인도 루피, 베트남 동보다 통화가치 절하폭이 컸다. 최근 원화 약세를 부추긴 것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중국의 경제 위기 가능성이다. 대외 악재가 터질 때마다 원화가 유독 휘청거리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원화의 취약성은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폭으로 벌어진 가운데 무역수지 악화와 성장률 저하 등으로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급격히 약해진 탓으로 봐야 한다. 지난 6월과 7월 무역수지가 두 달 연속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올해 들어 누적 적자가 278억달러를 넘는다.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1%대 초반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내년에도 1%대에 그치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란 경고가 해외 투자은행으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가계부채가 20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보다 커져 한 해 벌어들인 국민소득으로 가계빚을 못 갚는 유일한 나라가 된 데다, 나랏빚도 1000조원을 넘어서 국가 재정 관리마저 위태로운 상태다. 해외 투자자가 한국 경제를 ‘살얼음판’ 보듯 하니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돼도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중국의 경기 침체에 한국 통화부터 팔아치우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환율은 국가 경제력과 경쟁력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외환시장에 대한 통화정책의 영향력이 줄고, 결국 고유의 펀더멘털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원화가 ‘동네북 신세’를 면하려면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 혁신에 나설 기반을 마련하고 구조 개혁을 가속화해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